오늘도 최씨 가의 아침은 새하얗습니다.
이곳은 항상 눈이 내리니까요.
창밖 너머를 내다보면, 최씨 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천설 숲이 턱 하니 펼쳐집니다.
익숙한 풍경이네요.
최유찬:(하품 쩌억)
뭐, 상징이라 할 수 '있었던'으로 고쳐도 됩니다.
지금은 비쩍 곪아 검게 썩어간 나무들이 여전히 숲에 널려있으니 말입니다.
아, 최근 들어 나무들이 좀 회복되긴 했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들뜬 것도 이것 때문일까요.
가주 최천량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도 이 이유가 한몫하는 거겠죠.
그 사건만 아니었어도 집안 가세가 이렇게 기울지는 않았을 텐데...
최유찬:그래~... 무럭무럭 자라라... 그래야 내가 가주가 됐을 때 욕 안 먹지
그 인간 생각은 그만합시다.
잡념은 집어치우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면,
최유찬:
기준치: | 70/35/14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대문 쪽이 좀 소란스럽니다.
창밖을 보면 정문에 처음 보는 가마가 서있습니다.
손님일까요?
조금 많이 소란스러운 것이, 단순한 손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유찬:쯧, 심심해서 욕이라도 할려고 온 시정잡배인가보지~
(귀 후벼파면서 바닥에 드러 누워)
관심을 끄려던 찰나,
쨍그랑ㅡ!
접시가 깨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최유찬:아니 누가 내 재산을!
연이어 고함이 쩌렁쩌렁 집안을 울립니다.
가문의 배신자가 돌아왔다ㅡ!
최유찬:.....뭐?
배신자라고 하면 설마, 설마요.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현관 앞 쥐 떼처럼 모여있는 하인들을 해치고 그 앞에 서면,
당당하게 최씨 가문의 문 앞에 발을 들인 자유가 서 있습니다.
3년 만에 가문의 배신자가 돌아왔습니다.
최유찬:....하, 이런 오라질 새끼가...
자유:안녕, 최유찬.
최유찬:뭐?
꼭 어제 헤어졌다가 오늘 만난 것처럼 능청스럽기 짝이 없는 태도입니다.
저 낯짝은 철면피라도 뒤집어쓴 것일까요.
최유찬:정신머리가 한양에서 청나라까지 돌아버렸나
안녕 최유차안?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인 창용이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최유찬:도련님이라 해라 막돼먹은 꼬맹아
창용: 당신이 무슨 낯으로 여길 돌아왔어?! 뻔뻔하기 짝이 없기는!
창용을 바라보는 자유의 표정은 그저 태평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유:닥쳐, 당신 상대하러 온 거 아니니까.
가주님께 분명 서신을 보냈는데, 답장을 아무리 기다려도 하질 않으시니 직접 찾아오는 수밖에.
뒤편의 하인들이 소란스럽니다.
:서신?
무슨 서신이야, 설마 지난번에...
도대체 자유가 온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가주 최천량이 언질을 주지도 않았는데요.
하다못해 저녀석이 입을 좀 열면 좋을텐데,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줄 뿐입니다.
자유:이제 도련님이라고 부를 사이는 아니라...
곧이어 계단 쪽이 소란스러워집니다.
이제는 익숙한 엄호령 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집안을 울립니다.
최천량: 이게 무슨 소란이야!!!
가주의 등장에 벌떼같이 모여있던 하인들이 홍해 가르듯 길을 비킵니다.
최유찬:아, 아부지. 시끄러워요.
당신보다 한 발자국 더 앞에 나서, 자유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는 노골적인 혐오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자유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선 당당하게 말합니다.
자유:안녕하셨는지요, 가주님. 제가 보낸 편지는 분명 읽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왜 답장이 없으신지 그만, 궁금한 마음에.
최천량: 제정신 아닌 자식…. 그렇다고 면전에 대놓고 찾아와? 쯧….
분명 촛대라도 잡고 자유에게 휘두를 줄 모두가 기대했습니다만,
가주는 그 대신 혀만 차고선 등을 돌려 사랑채로 향했습니다.
최유찬: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하다못해 하인들도 감히 한 마디씩 거들어 항변합니다.
최유찬:뭔 편지?
저기 아부지. 둘이 뭔 애기야?
창용: 가주님! 저, 저 인간을 지금 집안에 들인단 말입니까?!
최유찬:아부지!!!
최천량: 어허! 조용히 하지못해!
최유찬:못하는데!
최천량: 내가 다아 해결할테니 물러나있어!
최유찬:곧 죽을 양반이 뭘 다 해결한다고 참나!
최천량: 이, 이, 이! 불효자 녀석이! 당장 들어가!
가주는 커다랗게 호통을 치고선 자유와 함께 사랑채로 향할 뿐입니다.
두 사람이 지나가고 남은, 폭풍 후의 현장은 지나치게도 고요했습니다.
최유찬:하! 허! 맷돌 어이가 없네
뭐, 발언권조차 없는 하인들은 결국 자기들끼리의 뒷담화를 시작하며 제 할 일을 다시 하러 미적미적 몸을 움직였습니다.
당신의 유모 복단은 옆에서 당신 눈치를 살핍니다.
복단: 도련님, 괜찮으세요?
최유찬:아니 안괜찮아.
아침부터 웬 소란이야 이게.
밥 맛 떨어지게.....
복단: 아이고. 물론 갑자기 저자가 나타났으니 그럴만도 하지만요... 대체 왜 나타난 걸까요?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인지 원, 깨어나자마자 정신이 없습니다.
최유찬:....유모. 나 배고파
저 놈은 아부지가 알아서 하겠지
아님... 돈이라도 노리고 왔나.
쯧, 키운 은혜를 모르고..(개투덜투덜)
복단: 그렇다기엔 행색이 좀, 잘 먹고 잘 산 것 같지 않아요? 허 참, 가당찮아! 정말 재수없지만, 말씀대로 가주님이 잘 해결해주시겠죠...
일단 도련님 식사부터 하러갈까요? 오늘 반찬은...
겸인 국단이 다가와 급히 두 사람 앞에 섭니다.
최유찬:오늘 반찬은?
국단: 저, 도련님. 가주님께서 사랑채로 오라고 하십니다.
복단: 아니, 도련님도?
최유찬:으엉? 아 싫어 배고파. 밥 먹고 갈래
복단: 그래, 우리 도련님 식사는 하시고 가야하는데...
최유찬:나 밥 안먹으면 성질 더러워지는거 알지?
국단: 안 됩니다. 가주님이 바로 오라고 명하셔서.
그의 낯빛이 흙빛입니다.
불길함을 직감한 복단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어쩌겠어요, 가주의 명인데 가봐야지.
최유찬:.... (손으로 머리 헤집고는) 아~!! 진짜!! 망할 영감.
그래! 가자 가!
유모! 대신 다과라도 들여주라.
개성주악 들여줘~!
복단: 네, 도련님 좋아하시는 걸로 한상가득 들여갈게요.
최유찬:(사랑채로 설렁 걸어간다)
국단: 제가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닙니다만. 두 분이 하시는 이야기 듣고 놀라서 기절하시면 안 됩니다….
그를 따라 사랑채로 향하는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지는 기분입니다.
자유를 만날 생각을 하면 체할 듯 가슴 답답하고 기분이 이상합니다.
최유찬:에이, 국단. 내가 누구야. 요 3보되는 나무 올라가 떨어져 팔이 두동강 나도 기절 안했어~
(케헤헤헤헤 웃어)
국단: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긴 복도를 걸어, 사랑채 안으로 들어서면 건너편에는 자유가, 맞은 편에는 최천량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어째 최천량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도대체 무슨 대화가 오간 걸까요.
최유찬:.....(어우, 부담스러.)
최천량: 최유찬. 앉아라.
최유찬:(대충 고개 끄덕이며 최천량 옆에 앉는다.) 분위기 왜 이래
최천량: 어허......
한참이고 뜸을 들이던 최천량이 겨우 입을 엽니다.
최천량: 유찬아. 너도 이제 어엿하게 최씨 가문의 사람으로 컸지.
이제 너도 혼인할 때가 됐지 않았느냐?
최유찬:곧 계란 한 판인데 뭘 새삼스럽게 그래?
혼인?????
아니 혼처가 들어와?
우리 집안 꼬라지 난리인거 이 근방 가문들 다 아는데?
최천량: ...그래, 다행인 일이지. 좋으냐?
최유찬:아니.........
걍 기분이 요지경인데........
최천량: 사실 네 기분은 알 바가 아니고, 그러니 자유의 제안을 수락하고자 한다.
최유찬:뭐야? 이 영감이 진짜.
자유의 제안이라뇨. 혼인이라뇨.
최유찬:쟤 우리 집 하인으로 다시 들어와?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자유가 당신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자유:저와 혼인하실까요, 낭군님.
최유찬:............
...........................................................................................................................
보통 저 대사는 복단에게 듣기론 사랑하는 연인들 하는 고백이라 들었습니다.
고전 소설의 맨 마지막 장에서, 두 연인이 사랑을 고하며 말하는 대사라고 들었는데.
근데 왜 저 대사가 저 인간 입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잘못 먹기라도 한 걸까요?
혹시 이거 꿈인가?
최유찬:영감, 영감. 나 좀 쳐봐.
자유:가주님과 잘 생각해봐요. 당장 수락하는 건 뭐, 기대도 안 했으니까.
최유찬:이런 육시랄. 꿈을 꾸나
자유:아, 참고로 말하는데... 가주님께서는 이미 허락하셨어요. 그냥 통보하러 온 거에요.
그저 제 할 말만 하고선 자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저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최천량이 분명 화를 낼 법도 한데...
최유찬:어엉? 야,야!
그는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앉아 눈을 질끈 감고 생각에 잠겨있을 뿐입니다.
최유찬:어딜 어린 새끼가 먼저 일어나!
드르륵, 하고 문이 닫힌 사랑채에는 손님 없이 그저 최씨의 두 사람만이 앉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최유찬:허어?
최천량: 유찬아, 미안하게 됐다.
최유찬:아니 아부지. 입 닫고 있지 말고 말을 해봐.
왜?
왜에?
아ㅏ아아ㅏ아아아왜에에에ㅔㅔ에ㅔ에ㅔ에ㅔㅔ에ㅔ~!!!!!!!!!!!!!!
최천량: 알면 네가 마음에 신경 쓰여 할까,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만...
최유찬:아니 아부지...
손자 안 봐도 돼?
최천량: 자유는 우리 가문을 배신하고 나서, 유씨 가문으로 갔다. 너도 유씨 가문의 명성은 익히 들어봤을 거다. 류하 운하를 낀 부호 가문 말이다... 우리와는 거리가 멀어 교류는 없었다만.
유씨 가문이라면 분명 명성은 모를 수야 모를 수가 없습니다.
최유찬:(뭔소리야?머리지끈)
다른 지역에서 넘어오고, 넘기는 물건들은 전부 그 운하를 지날 수밖에 없기에 유씨 가문은 운하 수송으로 유명한 집안이죠.
비록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그 재력만큼은 확실합니다.
최천량: 그 녀석이... 유씨 가문과 혈연이 이어져 있다지 뭐냐?
최유찬:........사생아래?
나,나. 옛날에 쟤 눈 밭에 던졌는데.
최천량:모르지, 나도. 아무튼 손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의 재력이 필요하다고.
이젠 그저 숲에서 사냥하고, 나무를 베는 것만으로는 가문을 이어나갈 수가 없어. 심지어 이번 가을은 흉작이고, 숲도 이제야 살아나고 있고... 아직 겨울은 몇번의 해가 떠도 끝나질 않건만, 벌써 쌀 창고는 한 채가 텅 비었지.
최유찬:근데 저 새끼가 우리 숲 불태운거잖아.
재가 원인이잖아.
최천량:그건 그렇지만, 벌써 3년이 다 지난 일이다. 언제까지고 그 사건에 연연해서 미래를 망칠 수는 없잖나.
최유찬:아무리 좋게 생각 해보려고 해도 결국 내가 팔려나가는 기분이 들거든 지금?
내가 그럴 위치야?
최천량:어허... 가문은 살리고 봐야지. 어차피 너희 둘도 어릴 때는 사이 좋았다며. 응?
최유찬:하, 아 진짜... 진짜...... 유씨가문이뭔데!!!!!!!!!!!!!!!!!!!!!!!!!!!!!!!
쟤 내 하인이였다고!!!!!!!!!!!!!!!!!!!!!!!!
최천량:목소리 안 줄여!!!
최유찬:하인이랑 혼인하는게 말이야 방구야!!!!!!!!!!!!!!!!!!!!!!!!!!!!
안해!!!!!!!!!!!!안할거야!!!!!!!!!!!!!!!!!!!!!!!!!!!!!
최천량:유씨 가문과 이참에 연을 터야지!!!!! 그들과 사돈 관계를 맺으면 어찌 됐든 형식상으로나마 돕지 않겠어!
내말대로 해!!!! 최유찬!!!
최유찬:아부지 존나 미워!!!!!!!!!!!!!!!!!!!!!!!!!!
도대체 누구 때문에 집안이 이렇게 됐는데.
집안이 어렵다고 한들 왜 저 배신자의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요.
최유찬:(바닥에 누워 이리저리굴러다님)
머리끝까지 열이 차올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 내가!
가문을 위해서라지만 이런 혼인은 아니죠.
가문의 배신자와 차기 가주인 내가?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최천량:당장 일어나지 못해!!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굴 거야! 어!!!
최유찬:아왜!!!!!!!!!건강하게만자라달라며!!!!!!!!!
최천량:이제 다 자랐으니 제값을 해야지!!! 너무 건강해, 너무!
최유찬:하....................
그래, 정리하면.
아부지는 내가 자유 저 놈이랑 혼인해서. 유씨 가문인이랑 연을 좀 연결해라 이 말이지?
최천량:그래, 바로 그거지.
최유찬:그럼 내가 출가해 아니면 걔가 우리 집에 들어와?
나 차기 가주 신분 유지해줄거야???
최천량:아이고, 그럼 당연하지! 너 아님 우리 가문 이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최유찬:그치? 나 없으면 최씨 가문 씨가 마르는거야.
최천량:그래, 그래. 적당히 방계나 사생아 하나 데려와. 다 나중에 너 잘먹고 잘살라고 하는 것 아냐.
최유찬:그으래...... 밥상 한 가득 고기 반찬으로 안 먹은지 오랜데...... 자유 그 자식 단물을 아주 쏙쏙 빨아먹어서 말라 비틀어주마..!!!!!
해!!! 혼인!!!!!!
최천량:그래, 그래! 우리 아들 밖에 없다! (크하하하 웃어)
최유찬:어어, 나 최씨 가문 38대손 차기 가주 최유찬이야~!!! (크하하하하 웃는다)
그래요. 언젠가는 확정되었을 정략혼이,
그냥 지금 찾아온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자유를 만나 적어도 따져봐야하지 않겠어요?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말이에요.
아무래도 수상쩍잖아요...
사랑채를 나와 창밖을 보면, 천설 숲 입구에 서있는 자유가 보입니다.
홀린 듯이 그를 쫓아 숲 입구에 섰습니다.
최씨 가문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천설 숲은 겨울이라 그런지 더 눈이 발에 파입니다.
자유는 가만히 반대편에서 숲의 깊은 안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신이 오는 기척을 들은 것인지, 그는 시선을 돌려 마주봅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좀 차분해 보입니다.
최유찬:( 무표정으로 꼬라보기 )
자유:......제가 왜 이곳에 돌아왔을 것 같아요?
눈을 헤치고 자유가 당신의 앞에 섭니다.
시린 찬 공기에, 가까이 몸을 맞댄 그의 입김이 볼 끝에 서려 닿았습니다.
최유찬: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준 약과가 그리워서 왔냐?
자유:그것도 그립긴 했는데...
당신과 혼인하고 싶었어요.
허!
당사자의 입으로 한 번 더 들으니 또다시 헛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나와 혼인하고 싶다고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유찬:하! 유씨 가문에서 시키든?
그렇게 하라고?
너 그 가문이랑 무슨 관계야.
자유:생각이 너무 짧은 거 아녜요? 최씨 가문과 연이 생겨서 이득볼 게 뭐가 있다고.
가문을 이 꼴로 만든 게 누군데!
최유찬:누가 이 꼴로 만들었는데!
너 때문에 임마. 어?
나를 기만해놓고, 나를 두고 유씨 가문에서 3년간 도망쳐 살아온 주제에.
최유찬:맨날 반찬에 나물이 세 개가 들어와!
그래놓고 뻔뻔스레 얼굴을 다시 들이민 주제에 나에게 청혼을 해.
최유찬:최씨 가문이 얼마나 명문 가문이었는데!
잘도 박수 치면서 고맙다고 울어줄 리가 없잖아요.
저것이 나를 사랑하건 말건,
최유찬:아주 뻔뻔해서 뻔데기가 친구하자고 하겠다!
그것이 내가 겪은 모든 배신과 분노, 체념, 허기를 덮어줄 청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유:뻔뻔하다뇨. 오히려 잘 된 것 같은데요, 거절할 수도 없을테니.
기회가 온 거라고 생각해요. 나와 유씨 가문을 이용하는 거라고.
어차피 가주는 네 의사와 상관없이 혼인을 진행할테니까.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는 스스로 결정하는 게, 자존심이 덜 상하지 않겠어요?
최유찬:어. 안 그래도 그럴려고 했다.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해봐야지.
아주 단물을 어?! 쪽쪽 빨아먹다 못해 말라 비틀어져 재가 되게 해줄게 너.
그리고. 네? 네에?
이게 혼인 한다고 호칭을 아주 다 말아먹네?
너, 너 몇살이었지?
자유:부군 나이도 기억 못하면 어떡하지. 7살 연하잖아요.
최유찬:어, 그래 꼬맹아.
앞으로 서방님이라고 님자 붙여서 말해라. 어딜 하늘같이 높은 남편한테!
자유:네에, 서방님. 혼례식은 언제가 좋을까요?
그래, 일주일 뒤로 하자. 좋으시죠?
도대체 누구에게 허락을 맡은 건지조차 모를 당당함으로 그는 혼례식 날짜까지 미리 잡아버렸습니다.
30초. 혼인이 확정되는 순간입니다.
최유찬:(개당당하네;;;;)
물론 최유찬 당신의 의지가 어느 정도 담겨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자유는 당신의 손등을 겹쳐 잡아 작은 입맞춤을 해왔습니다.
시린 손등에 아주 찰나의 열이 닿았습니다.
최유찬:(왐마야)
그리고 그는 짧은 인사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맞은 편에서 다급히 달려오는 하인이 보입니다. 창용입니다.
창용: 아이고, 도련님! 겉옷이라도 좀 챙기고 오시지.
숨을 헐떡이던 창용은 자유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투덜댑니다.
창용: 정말이지, 가주님도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저 시정잡배를 이 집안에 들일 수가 있는지...
최유찬:(손등을 잠깐 내려다보고는) 뭘 추워. 익숙한데.
.....그러게나 말이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존나 작았던 꼬맹이가 뭘 먹고 이렇게 커서 온건지.
이젠 시발. 약과도 입에 못 던져주겠다야.
창용: 도련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구요. 이미 집안에 이야기가 다 퍼졌습니다! 정략혼인이, 어떻게 말이 됩니까? 팔려가는 거지요!
최유찬:쓰읍.
그는 한참이고 말문이 막힌 듯 어벙하게 말을 더듬습니다.
창용: 아니, 도련님. 서, 설마 이대로 가만 있으시려고요?
최유찬:창용아. 내가 누구냐.
나 최유찬이야.
하인들한테 얘기 돌려. 팔려가는게 아니라 가문 간 거래를 위함이라고.
창용: 물론 도련님이야 믿지만... 어흑! 조그만했던 도련님을 어떻게 저런 놈한테 보낸단 말입니까아...
유씨 가문에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쪽 가주님은, 좀 유한 성격이라... 어떻게든 개입해주시지 않을까요? 네에?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최유찬:그래그래. 혼인해도 난 최씨 가문 차기 가주야. 네가 너희를 버리겠냐.
창용은 은근슬쩍 권유해옵니다.
최유찬:쓰읍
아 그러네. 유씨 가문 그 쪽들은 뭔 생각이냐
창용: 그러니까요! 수상하지 않습니까!
그러고보니 애초에 자유는 유씨 가문 사람이라고는 하나 가주는 아니잖아요.
창용: 애초에 그 놈이 유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도 안 믿깁니다요, 저는. 어떻게 그런 녀석이... 뭔가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최유찬:너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말로는 나랑 혼인하고 싶어서 왔다 하는데.
창용: 그놈이 감히 어떻게 우리 도련님을 넘봅니까! 고작 노비였던 녀석이!
최유찬:유씨 가문 찾아가봐?
창용: 예, 예 도련님! 당장이라도 갈 준비가 된 말이 있습니다.
3각이면 도착할텐데, 준비해드릴까요?
당신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바로 반색하며 반깁니다.
혼례식까지 남은 날짜는 고작 일주일.
벌써 집안은 정략혼인으로 이야기가 퍼졌고,
자유의 말대로 이 혼인은 별 문제가 없는 이상 그대로 진행될 겁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구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최유찬:쯧.... 하여간 곤란하다니까...
어, 가자.
창용: 제가 자유 그자를 찾아 조금 시간을 벌 테니, 그 인간이 먼저 돌아가기 전에 얼른 유씨로 가보세요.
최유찬:잘 잡아놔. 내가 몸 빡빡 씻으라고 했다고 욕탕에 1시간 정도는 붙잡아 둬
창용: 물론입죠! 꽉 붙들어 놓겠습니다.
창용의 도움으로, 가주를 만나러 갈 채비를 마친 당신은 그대로 말을 끌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최유찬:(이럇~!!)
유씨 가택 앞에 도착하고 나면 바로 저 너머로 보이는 것이 류하 강입니다.
언제 보아도 명화로군요.
그 강을 등 뒤로 한 가택의 삶도 얼마나 호화로울까요.
우리 최씨 가 근처 날씨는 살인적이기만 한데...
:아아, 그…. 최 가의 최유찬님이시군요. 그런데 그으…. 어찌 갑작스레 찾아오셨습니까.
최유찬:(눈꼴 시렵네. 미간 팍 찌푸렸다가) 유씨 가문 가주님께 드릴 말이 있어 찾아왔다. 급한 일인데.
당신의 말에 하인은 당황하여 눈치를 살핍니다.
뭔가 아까 전 상황의 데자뷰 같네요.
빗자루를 들고 멍하니 당신을 보던 하인은, 결국 주인을 찾아 부리나케 향하고야 말았습니다.
당신을 향한 주변인들의 시선이 조금은 신경 쓰이게 온몸에 박혔을 무렵, 하인은 다시 돌아옵니다.
:유수은님께서 친히 맞이하시겠답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최유찬:(뭘봐라는 시선을 유씨 가문 하인들에게 날려주기. 머리 숙이지 못할 망정 시발.)
안내 부탁하지. (하인 뒤를 천천히 쫓아간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저택 안으로 들어서면, 최씨 가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내부가 당신을 반깁니다.
최 가는 다소 검소한 집안 분위기에 흑단 나무로 만들어진 저택까지 더해 전체적으로 집안 분위기가 칙칙하니까요. 흔히 고상하다고 불리죠.
반면 유가는 부호 가문인데도 사치에 치중하기보단 훨씬 청아하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넓은 들판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기분 좋게 최유찬의 뺨을 간질입니다.
자유는 이런 곳에서 지냈던 걸까요.
배신자 주제에 상당히 잘 지냈을 것 같네요.
최유찬:(아;; 분위기 너무 맑아;; 정화될 것 같아)
..... 분위기가 최씨 가문과 많이 다르군.
그 자시,아니. 자유도 이 곳에서 지낸건가?
:예? 자유 님이요? 물론이지요.
최유찬:자유는 가문에서 위치가 어떻지?
:자유님이요? 그건...
잡다한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새 사랑채 안입니다.
화사한 풍채의 유수은이 손수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을 맞이합니다.
유수은: 최 도령께서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군요.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듣던 대로 다정한 사람입니다.
분위기에 못 이겨 다과까지 대접받고 나서야 대화의 물꼬가 트입니다.
최유찬:(다과? 개맛있겠네. 못 이긴 척 약과 하나 들어 먹는다.)
자유가 저희 가문에 찾아와 혼인을 제안했습니다. 가주님도 허락한 부분이신지.
유수은:예, 물론이지요. 자유님... 아니, 자유. 그는 진심으로 당신과 혼인하고 싶어한답니다. 나 또한 최씨 가문과 이참에 연을 트면 좋겠다 싶어 승낙했지요.
최유찬:(자유님? 쎄함을 느낌) 하... 우습군. 먼저 우리 가문에 해를 가한 건 유씨 가문의 자유다. 정말로 좋은 연이 트일 것 같다 판단되는 겁니까?
유수은:그럼, 물론이지요. 우리는 상단 일을 하면서 항상 이익을 따집니다. 그대의 가문과 사돈 관계를 맺으면 서로 이득이 아닙니까? 당신들의 천설 숲에서 얻은 각종 수렵품과 채집품들을 유씨 가문에 맡아 팔기만 하면 얼마나 좋아요.
최유찬:혼인을 무르시죠.
지금은 유씨 가문의 사람이라 한들 과거 제 하인이였습니다.
유수은:하하... 정략혼인이라 불릴지언정 우리는 이미 자유의 결정을 존중하고,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답니다. 서로 상생하는 관계로 지내면 어떨까요.
최유찬:장차 제 것이 될 최씨 가문의 이미지는 전혀 고려해주지 않으시군요.
유수은:그 점은 나도 유감입니다만... 과거 하인이었다 한들 누가 알겠습니까. 아랫것들 입단속은 철저히 하겠습니다.
게다가, 혼례식 준비를 이미 시작했거든요.
최유찬:(뭐? 시발 행동 존나 빠르네;;;; 차 후룹 한 잔 마셔) 애초에... 자유는 유씨 가문과 뭡니까?
유수은:친척 관계지요. 자유가 부탁하여 거둔 것 뿐입니다. 물론 최 가에 끼친 피해나, 그 이야기도 알고는 있지만... 알다시피 인연이 닿아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최유찬:결론은 혼인을 무를 생각은 없다군요.
유수은:그렇지요. 그야 자유는 당신을...
유수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최유찬:유씨 가문의 생각은 잘 알았...
갑작스레 똑똑, 하고 다급한 노크 소리가 문 너머로 울립니다.
유수은:지금 손님이 있는데. 무슨 일이냐.
무례를 무릅쓰고 빼꼼 열린 문밖으로 인영 둘이 보입니다.
아까 전 최유찬를 안내했던 하인,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복단입니다.
당장이라도 희게 질린 듯한 얼굴로 안을 두리번거리던 복단은, 당신을 보자마자 다급히 종종걸음으로 다가옵니다.
최유찬:유모?
복단: 죄송합니다, 유 가주님. 지금 저희 가문에 급한 일이 생겨서 급히 도련님을 모시고 오라는 주인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도련님...!!
최유찬:무슨일이지.
급한 일?
연신 사죄하며 허릴 숙이던 복단이,
당신의 귓가에 황급히 속삭입니다.
당신만 들을 수 있을 목소리로요.
복단: 큰일 났어요, 도련님!
최유찬:아, 뭔데 유모. 나 지금 분위기 잡고 있었는데.. (소곤)
복단: 창용이 천설 숲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됐다고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멍청히 나올 뻔한 것을 겨우 막았습니다.
창용이 살해당했다고요?
젠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요.
유수은: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 일을...
일단 유수은에게 자세히 알려봤자 좋을 것은 없겠습니다.
우선 어서 돌아가는 게 최우선일테니까요.
대화 도중 이렇게 자리를 뜨는 것이 예의는 아니지만, 일단 상황이 상황이니 어서 돌아갑시다.
최유찬:..... 저희 가주님께서 하나 뿐인 아들을 급히 찾으시는 군요.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왔지만 자리를 내어주신 것 감사합니다.
가자, 복단.
유수은: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사양말고 얼른 가보셔도 좋습니다. 최 도령, 다음에 다시 봅시다.
무슨 정신으로 유씨 가에서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복단: 아아... 숲의 신님, 우리 도련님이 무사하게 보호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집안이 얼마나 뒤집어졌는 지 아세요? 창용이 마지막으로 도련님을 뵈러 간다고 하고 나서 저런 꼴로 발견됐지, 심지어 도련님은 모습이 보이시지도 않지!
최유찬:뭐? 내가 창용이한테 자유 좀 붙잡아 두라고 했었는데.
복단: 정말인지, 주인님께서 실신하시는 줄 알았어요. 저도 그렇고. 큰일 난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셔요?
최유찬:창용이가 나 유씨 가문 간다는 거 말 안했어?
복단: 도련님을 뵈러간다는 이후로 보이질 않았지요!
최유찬:..... 하, 시발... 그럼 나랑 헤어지고 아예 집으로 안 들어갔다는 소리잖아.
일단 빨리 집에 가자.
어떻게 죽었는지.. 어떤 새끼가 죽였는지 좀 찾아보자고.
말은 그대로 최유찬를 싣고 천설 숲을 향해 빠르게 질주했습니다. 복단의 안내를 받아 익숙한 천설 숲 깊은 곳까지 홀린 듯이 발을 디뎌 들어가면…
하인들이 둘러싼 그 앞에 시체 하나가, 당신의 눈앞에 나타납니다.
:너무 끔찍하잖아... 곰이라도 만난 건가?
이곳에 얼마나 오래 지내셨는데, 짐승에 허무하게 당한다고? 젠장. 숲지기들은 대체 뭘 한 거야?
하인들은 저마다 떠들어대다가, 뒤에서 나타난 최유찬를 보자마자 다시 한 마디씩 건넵니다.
몸은 괜찮으신 건가, 최유찬님이 보이지 않아서 같이 화를 당한 줄 알고 가주님이 얼마나 걱정하셨는지는 아는가….
비우: ...우욱…. 죄송해요, 저 더는 못 있겠….
하인들 틈 사이로 겨우 서 있던 숲지기 중 하나, 비우는 결국 입을 틀어막고선 숲의 입구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하인들과 복단은 혀를 쯧쯧 찹니다.
최유찬:하......
복단: 비우가 맨 처음 발견했다고 하더라고요. 저 아이는 참... 짐승 사체도 못 보는 것이...
:아까부터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저 녀석 무례를 용서해주세요, 도련님...
최유찬:됐어.
이래저래 주위에서 말들이 떠들어봐도 잘 들리지는 않습니다.
그야 당신 눈앞에 시체가 있으니까요.
짐승이 뜯어먹다 사라진 듯한, 다리가 뜯어진 시체는 몰골이 흉측합니다.
하지만 단순 그것이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도 보일 것이 눈 속에 스며든 저 피를 하고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저 얼굴은….
이제 동안 오래 최씨 가를 지탱해온 자의 죽음을 보는 것이 어떻게 익숙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저렇게 끔직한 시체를 보면요.
최유찬:
기준치: | 70/35/14 |
굴림: | 94 |
판정결과: | 실패 |
최유찬, 이성 4 감소.
옆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던 복단이 손수건을 당신에게 건네줍니다.
복단: 도련님, 하인들 말로는 창용의 시체가 조금 이상하다고 해서요. 괴로우시더라도 봐주시겠어요? 제가 옆에서 봐도 보통 사고는 아닌 것 같아요.
손수건을 뚫고도 훅 끼쳐오는 피비린내는, 어느새 찬 바람이 불자 눈 속에 파묻혀 천천히 향이 옅어집니다.
최유찬:.....어. 안그래도 볼려고 했어.
(창용이 시체를 살펴본다.)
조금은 머리를 쑤셔대는 두통과 가슴을 두드려대는 불길함을 애써 잠재우며 그 앞에 섭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짐승에게 뜯어먹힌 왼쪽 다리입니다.
보기 흉한 것이, 결국 하인 한 명이 도포 하나를 들고 와, 창용의 다리 위에 덮어주자 그나마 볼 법합니다.
다른 이들의 말처럼 짐승에 습격당해 죽은 것일까요?
:이번 해는 흉작인 데다가 천설 숲도 상황은 마찬가지겠죠. 굶주린 곰이나 이리가 여기까지 내려왔을지도 모릅니다.
숲지기 쌍둥이분들께 이야기를 해봐야 할 지도요.
최유찬:
기준치: | 75/37/15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창용의 상체 부분이 뭔가 이상합니다.
단순히 짐승에게 할퀴어졌다기보다는 다른 상처도 있는데요.
깊게 찔렸습니다.
최유찬:(옷을 들춰본다.)
창용의 헤진 상의를 드러내면…
그의 복부, 가슴에 깊게 내리 찍힌 상처가 나 있습니다.
:......이리가 발톱으로 할퀸 것일까요? 하지만 이건 짐승보다는...
이 사람아! 그런 허튼소리 말게나.
그런데 그의 몸에 나 있는 상처를 보면 무언가 위화감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다쳤다면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야 말이 될 텐데.
말 그대로 '칼자국'만 있을 뿐, 혈흔은 그의 몸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련님, 얼굴이나 몸이 너무…. 시체라고 하기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최유찬:그러니까, 곰한테 죽은 건지 인간한테 죽은 건지 의견이 갈라진다고.
:숲의 날씨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 창백한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차갑긴 합니다. 물론 시체니까 당연한 거긴 하겠지만…. 피가 이렇게 빠르게 멎나?
지나치게 피란 피는 전부 사라진 듯한 인상의 그의 시체를 보면 이유 모를 찝찝함이 가시진 않습니다.
결국 창용의 몸에 있는 가장 큰 상처는, 짐승에게 당한 것인지 사람에게 찔린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습니다.
최유찬:눈이 내리는 중이라 발자국은 이미 가려졌을테고..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지금 날씨로는,
누군가 왔다 간 것인지도 모를 발자국들은 이미 눈에 묻혀 사라졌습니다.
그저 하인들과 당신이 숲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온 발자국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최유찬:아무리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린다 해도 피가 안 보이는게 말이 돼?
그러게 말입니다.
최유찬:그 씨뻘건게?
시체가 그렇게나 상처를 입었는데,
최유찬:아오, 창용아.
주변에 눈만 가득할 리가 없잖아요.
그 많던 피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가요.
아니요, 분명 당신이 처음 창용의 시체와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혈흔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하늘 위에서 그 시체 하나만 툭 떨어진 마냥 아무런 흔적도 없이 눈 속에 묻혀 사라졌습니다.
최유찬:야 비우가 처음 봤었을 때도 피가 없었어?
:그럴리가요. 도련님이 오시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피가 눈 속에 다 흡수된 걸까요?
분명 피가 주변에 흥건했는데…. 특히 비우 그 녀석은 피 때문에 아연실색하며 쓰러질 뻔도 했잖아.
최유찬:아니 씹. 놀랐잖아.
그럼 피가 있었는데 내가 왔을 때는 다 사라졌다는 거잖아
:네에, 그렇죠. 이 눈 밑에 있는 거려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하얄 수가 있나?
최유찬:피가 어? 어디로 흐르겠니.
아래로 흐르지
창용이 시체 아래 땅 파봐
(하인한테 턱짓한다.)
주변의 눈을 뒤집어 헤쳐보아도,
숲은 그저 순백의 색깔을 보일 뿐입니다.
아니, 아닙니다.
눈을 전부 손으로 파헤치면, 축축하게 젖은 흙이 드러납니다.
손에 젖어 녹아내린 눈 속에서는 섞여있지도 않던 피가,
손톱에 흙을 긁고 파내자마자 그대로 젖은 피가 함께 묻어나왔습니다.
최유찬:
기준치: | 76/38/15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분명 눈 속에서는 전혀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 어째서.
땅에 그대로 피가 뿌리내려있는 걸까요.
최유찬:
기준치: | 75/37/15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리고 흙 틈에서 무언가 파릇한 것이 보입니다.
채도없는 이 창백한 천설 숲에 이질적인 존재.
새싹입니다.
이름도, 종도 모를 식물의 싹잎.
지금은 겨울인데도...
피를 머금지 않은 눈, 한겨울, 모든 것이 얼어붙은 땅에 난 새싹.
몸속 모든 피를 잃은 시체.
자리에서 일어나 온통 새하얀 이 천설 숲을 둘러보기만 하면 -
이 숲은 언제나 그러하듯 새하얀 설원만이 침묵으로 당신을 쳐다볼 뿐입니다.
이 정도면 더이상 찾을 수 있는 건 없을 듯합니다.
최유찬:겨울에 새싹...
꿈이라도 꾼 거라면 좋을텐데...
(개큰한숨)
일단... 수레라도 가져와.
창용이 시체 수습하고.
:예, 예. 저희는 창용의 시신부터 수습하겠습니다.
복단: ...도련님. 가주님께 보고하러 가보시겠어요? 아니면 쌍둥이 숲지기도 만나시겠어요. 가장 먼저 창용을 발견한 건 그들이니까요.
최유찬:아버지한테는 안정 취하고 계시라 그래. 숲지기 먼저 만나보고 상황 좀 보고 간다고 말 전해.
숲지기 애들 거처가 어디냐?
복단: 숲속이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하인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복단은 최유찬를 데리고 숲 안에서 나와 다시 입구를 향해 돌아갑니다.
숲 안쪽에서 입구로는 천천히 걸어서도 10분은 넘습니다.
특히 복단의 느린 보폭을 맞춰주면 평소보다 더 넓게 숲의 시야가 눈에 들어옵니다.
최유찬:
기준치: | 75/37/15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복단의 이야기를 들으며 길을 걷다 보면...
빽빽한 흑단 나무들 사이에서 묘하게 뚫려있는 듯한 부분이 보입니다.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넓이의 길이….
꼭 숲 안으로 이어지는 것만 같은게.
이유모를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최유찬:숲에... 저런 곳이 있었었나.
복단: 예? 무얼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유찬:아니 저기 숲에 뭔가 길이 나 있는 것 같다고.
다시 시선을 돌리면 그저 빽빽한 산림만이 이어질 뿐입니다.
기분 탓이었을까요.
최유찬:(뭐야? 나 귀신에 홀렸어?)
에휴... 아냐. 가자.
복단와 함께 숲 입구까지 다시 돌아오면,
저 너머에 숲지기들이 감시를 서는 오두막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입니다.
안에 사람은 있나 봅니다.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 뒤로 한 오두막이 있습니다.
당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집이기도 하고요.
오두막 안을 들어서면 따뜻한 나무 향이 훅 끼쳐 들어옵니다.
장작불을 떼고 있었던 건지 후끈한 연기 덕에 추웠던 바깥 날씨도 싹 잊을 정도입니다.
웬일일까요, 보통은 절약하여 춥게 지내던 두 사람을 생각하면 조금은 의외긴 합니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비현이 당신을 반깁니다.
쌍둥이 누나 쪽입니다.
비현: 도련님. 안 그래도 오실 것 같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옆에 있어야 했는데…
최유찬:됐어. 비우 녀석은?
비현은 말끝을 흐리고선 등 너머로 굳게 잠긴 작은 방 안을 흘긋 봅니다.
비현: ...비우가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아서, 제가 봐주느라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시체는 비우가 가장 먼저 발견했었다고 했죠.
쌍둥이 동생 비우는 예전부터 성정이 유약한 편이긴 했으니….
그렇게 끔찍한 시체를 보았다면 충격을 받았을 법도 하긴 합니다.
우선 비현과 먼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우에게서 무언가를 들었을지도 모르고,
숲지기인만큼 숲에서 당신이 발견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해야 하니까요.
최유찬:너는 비우랑 같이 숲 안 둘러본거야?
비현:같이 숲을 정찰하던 중, 비우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급히 따라갔더니 시체가 있었고요.
최유찬:시체에 짐승에 당한 흔적이 있었다는데...
자세히 보니까 칼 자국도 있었거든?
비현:짐승에게 당한 것이라면 명백히 저희 잘못입니다. 여기까지 짐승이 내려오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이 역할인데….
그런데, 칼 자국이라면... 타살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최유찬:어.
먼저 누군가에게 죽고 나중에 곰한테 당한 것 같아.
비현:하지만 그렇다는 건…. 누군가 이 숲에 들어왔다는 것 아닙니까. (사뭇 표정이 심각해진다.)
최유찬:그렇지 않고서야 피가 그렇게 빨리 땅으로 흡수 될리가 없지
발자국은 이미 사라졌어.
혹시 숲에서...
걔 본 적 있어?
비현:걔... 라뇨?
최유찬:....하씨. (뒷머리 북북) 자유.
비현:그게... 다들 그 녀석을 꺼려서 말입니다. 숲 입구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는 것을 보긴 했습니다. 그 뒤에 도련님이 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두 분 대화는 함부로 들어선 안된다 여겨 그냥 돌아갔는데...
그 후로 숲을 언제 떠났는지는 모르겠군요.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최유찬:.....아냐. 네 잘못은 없어.
근데
숲에 길이.. 나있냐?
아까 오두막 오는 길에 뭔가 안쪽으로 들어가는 듯한 길을 본 것 같아서
비현:길... 말씀이십니까?(잠시 침묵한다.)
최유찬:어릴 때 뛰어놀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
비현:...하아, 이런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말씀드려야겠죠? 잘못 느낀 게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하인들에게는 말하지 마십시오.
숲의 안쪽으로 향하는 옆길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그쪽으로 가면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도 않고 숲의 안으로 갈 수 있겠죠.
비현은 오두막 벽면에 붙어있는 지도를 하나 가져와 보여줍니다.
비현:하지만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이유는... 그 길이 험하고 돌아가는 길이라 방치된 지 꽤 오래되었기도 했고...
예부터 최씨 가의 극소수만 아는 길입니다. 현재는 가주님과 저희 숲지기들만 알고있어요.
최유찬:뭐? 아니 나도 몰랐는데
자유 일도 그렇고 이 옆길도 그렇고. 너희 진짜 너무하다;;
비현:그야 차기가주시니까요. 그런데 설마 외부인이 숲에 들어왔더래도 그 길을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여겼는데...
아니; 가주님이 아직 말씀드리지 말라고...
최유찬:시발 말만 차기가주지 걍 바보네.
너 내가 이 일 기억한다
비현:...예, 알겠습니다. 혹 샛길로 가보고 싶으시다면 추후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최유찬:어 옷 챙겨 입고 있더라
일단 아버지한테 갔다올테니까
시발 나 화났어.
비현:예... 비우도 진정이 되면 도련님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살펴가십시오.
최유찬:(아버지한테 존나 뛰어간다.)
방 안을 들어서자마자 피곤한 기색의 최천량의 모습이 보입니다.
최유찬:(방문 존나 크게 열어 쾅!!!!!!!!!!!!!!!!) 아부지!!!!!!!
최천량:어허. 조용히 하지 못해.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
그에게 짧게 보고들은 것들에 대하여 보고합니다.
기이하게 피가 사라진 채 죽은 창용, 시체를 뜯어먹은 짐승, 그리고 사라진 발자국…. 타살의 가능성까지.
최천량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꾹, 꾹 서류에 붓끝을 꾹 눌러대다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습니다.
최천량:오늘 종일 집안에 마가 끼었군. 이런 흉측한 사건이 우리 집안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유씨 가에 알려져서는 안 돼.
이미 일어난 일이니 아예 없던 일로 할 수는 없겠지, 허나 천설 숲 안에서 하인이 죽었다는 그런 소문이 퍼졌다간 가문에 큰 망신이지...
최유찬:쯧. 나도 알아
소문 안 나게 아래 것들 입 단속 좀 해줘
최천량:그래, 하아... 너는 약혼식에나 집중하거라.
나중에 마을로 내려가서 예물도 하나 준비하고. 전통적으로 항상, 혼인하는 가문끼리 각자 예물을 교환하지 않느냐.
최유찬:아 알았어... 내가 그것도 모를까봐
것보다.
숲에 옆길 있다며.
왜 말 안해줬어?
최천량:아니, 그 길을 네가 쓸 데가 어디있다고 알려주냐.
최유찬:진짜 내가 비현한테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아니!!!
미리 알았더라면 가서 놀았을텐데!!
최천량:이런 생각이나 하니 안 알려주지!
최유찬:유씨 가문 일도 그렇고 자유 일도 그렇고 옆길도 그렇고!
최천량:차차 승계를 하며 숲이나 가택의 비밀 공간을 알려주는 것 아니겠느냐.
최유찬:왜 아무것도 말 안해주는데에~!!!
내가 보자기로 보여?!
최천량:네가 이러니 걱정되는 것 아니겠어! 이틀 후가 약혼식이니 그것이나 서둘러라!
최유찬:아씨!
최천량:어? 이러다 식을 망칠까봐 걱정이야 걱정!
최유찬:창용이 일은 내가 해결해볼테니까!
아부지는 앉아서 놀기나 하슈!
(아버지 서류 손으로 엎고 튀어나옴)
최천량:창용이 일도, 심하게 설쳐대진 말고. 응?
아니!
이놈이!!!
보고는 얼추 끝마쳤으니, 다시 비현에게 돌아가봅시다.
계속해서 내리는 눈에 남은 흔적마저 전부 없어져 버리기 전에, 그 문제의 옆길로도 들어가봐야겠습니다.
뒤통수로 커다란 고함이 들려옵니다.
최천량:최유찬!!! 허튼짓할 생각말고 예물이나 준비해!!!!!
최유찬:(무시한다.)
(오두막으로 뛰어간다.)
비현은 당신을 데리고 오두막에서 나와, 숲의 입구 앞에 섭니다.
수없이 보아 온, 평범하기 다를 것 없는 천설 숲은 얼핏 보기엔 아무런 이상도 못 느끼는 정도입니다.
숲 안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 있는 길에서 고갤 돌려-
비현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흰 기둥이 있습니다.
천설 숲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있는, 일종의 표식입니다.
가문 문장이 새겨진 천은 기둥에 묶여있어,
때로 길을 잃는 이들에게는 이정표가 되기도 합니다.
저 기둥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데요.
비현에게 이끌려 그 뒤로 가보면….
기둥의 앞에서는 보지 못했던, 나무들에 의해 가려진 공간이 있습니다.
푹 쌓인 눈에 의해 가려진,
그럼에도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듯,
나무들이 자리를 비켜준 채 난 숲의 길이 보입니다.
이런 길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이 가서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저 숲 일부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공간이긴 하니까요.
최유찬:와..... 내가 이걸 몰랐다고. 어릴 때 더 뛰어 노는건데.
비현:이 길은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입니다. 하인들한테도 함부로 알려주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최유찬:아 당연하지. 나만 알고 있어야지.
그리고 옆길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비현의 표정은 천천히 경악에 물듭니다.
옆길은 유독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이 길을 치우진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눈에는 누군가 마치 길을 걸어 다닌 것처럼,
눈이 고르지 않게 치우쳐져 있음을 확인합니다.
비현:...말도 안 돼, 정말 누군가가 이 옆길로 숲 안쪽으로 들어간 건가?
비현이 허릴 숙여 깊게 쌓인 눈을 걷어냅니다.
그러면, 축축한 땅바닥에 찍힌 발자국이 경계가 흐려진 채 길을 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흔들리는 눈빛과 마주합니다.
누군가 이 옆길을 사용한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숲의 안쪽으로 드나든 것일까요.
최유찬:어떤 자식이야.
감히 차기 가주도 안간 길을
...야 너 무기가 될 거 뭐라고 가져왔냐?
비현:예? 검은 물론 가지고 다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외부인이 이 길을 알 리가 없는데...
현재 이 길을 알고있는 건 도련님과 가주님, 저희 쌍둥이들 뿐인걸요.
그저 옆길로 다니기 위해 쓴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단순히 창용의 죽음과 이 사태가 무관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최유찬:근데 발자국이 있다는 건 결국 외부인이 알았다는 소리잖아.
잘 들고 있어.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비현:......대체 어떻게 안 걸까요? 면목이 없습니다.
숲의 옆길을 끝까지 지나가, 숲의 안쪽까지 들어왔을 때도 발자국은 결국 이어져 있었습니다.
숲 안쪽에서 창용의 시체가 있는 곳까지 흙을 파내 발자국을 확인하려 들면 늦었습니다.
이미 하인과 복단, 그리고 당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어지럽습니다.
비현이 창용의 시체가 있던 자리를 계속 돌아다니며 단서를 찾는 도중에, 당신은 숲의 주변을 돌아봅니다.
최유찬:
기준치: | 75/37/15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숲의 샛길 도중에 다른 쪽으로 향하는 작은 길을 찾았습니다.
최유찬:비현! 이 쪽으로 가면 뭐 있냐?!
비현과는 어느새 멀어져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유찬:저 시키 봐라;;
야! 나 이 쪽으로 가본다~!!!
비현:(않들림;;)
최유찬:시발. 가주 되기만 해봐. 숲지기 애들 교체 시킨다.
(꿍얼대며 작은 길로 가본다)
앞을 가로막는 호랑가시나무 수풀을 해치면,
중천에 떠오른 해가 유일하게 닿는 작은 뜰 앞에 섭니다.
숲의 안에서도 더 깊숙한 곳에 있는,
해의 안식을 받으며 설원의 고요함 아래 잠들어있는 자들의 무덤입니다.
역대 최씨 가의 주인들을 위한 묘지였군요.
이런 곳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최유찬:묘지..?
가만히 이곳에 서 있기만 해도 가슴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가장 웅장하게 깎아진 중앙에 있는 묘비 하나, 그 옆에 나란히 놓인 평범한 묘비, 그리고 다른 묘비들에 비해 작은 묘비가 보입니다.
최유찬:공동 묘지가 있었네...
아니 진짜 왜 말을 안해줘.
(가장 웅장한 묘비 하나 본다.) 이 묘비는 왜 이렇게 커. 최씨 가문 초대라도 돼?
[○○○ 최씨, 최씨 가의 첫 영광을 시작한 이여, 이곳에 영원히 이곳을 수호하소서.]
묘비명을 읽어보니 초대 가주인 듯합니다.
최유찬:..........진짜?
내 고고고고고고증조 할아버지라고?
아부지가 왜 안알려 줬나 했더니만 묘지여서 그랬나.
(평범한 묘비 살펴본다.)
그 주변을 보면 푸른 꽃이 피어있습니다.
드물게 보는 꽃입니다.
[□□□ 최씨, ○○○ 최씨의 유일이자 평생의 반려여. 이곳에 거룩히 잠드소서.]
최씨 가의 가주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이곳에서 잠드는 것 같습니다.
여기도 작은 풀이 자라있네요. 생명력이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최유찬:겨울이라고 풀이 아예 자라진 않는건가.
오늘따라 머리 아픈 일이 많다
(마지막 작은 묘비 본다)
이 넓은 뜰에 있는 묘비 중에서도,
유달리 작은 축에 속하고 -
제대로 다듬어지지도 않은 돌로 새겨진 묘비입니다.
유달리 눈에 띄는 외향일 터인데,
조금 뒤편에 자리 잡아 묘비명을 읽으려면 눈을 해치고 그 앞으로 가야 합니다.
서 있는 것조차 아슬아슬한 묘비.
어쩌면 버려진 것 같은.
자세를 낮추어 묘비와 눈을 맞춘 채 글귀를 읽으면….
최유찬:이거뭐냐시발
아니
묘지의 주인은 다름 아닌 최유찬 당신이었습니다.
최유찬:아니.........
아니이........
어째서 나의 이름이 이 묘비에 적혀있는 걸까요.
그 어떤 것도 없이 홀로 묘비만이 있는 땅 밑에 손을 대면 차갑습니다.
최유찬:여기 눈 시퍼렇게 뜨고 내가 살아있는데 왜 묘비를 세워?!?!?
하지만 당신의 손은 뜨겁고,
내뱉고 있는 입김은 따뜻합니다.
네, 누가 봐도 당신은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왜 묘비를 자신조차 모르게 이곳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유찬:
기준치: | 76/38/15 |
굴림: | 7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저벅.
그리고 최유찬의 맞은편, 누군가 다가옵니다.
최유찬:내가 우리 아부지 묘비도 없는데
왜 내가 먼저 있는건데
그대로 당신이 허릴 숙여 보고 있던 묘비 위를 눈으로 덮습니다.
최유찬:이게 말이야 방구야?
아니 시발 누구야?!
작은 묘비는 눈 한 다발이 퍼부어졌을 뿐인데,
금새 눈 속에 잠겨 묻혀버렸습니다.
...고갤 돌리면, 자유입니다.
자유:열병을 앓느라 기억도 안 나겠지만...
심하게 아팠으니까, 그때 다들 말했었다고 해요. 곧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이라고.
...그래서 묘비를 만들어둔 거죠.
물론 지금은 쓸 일 없어졌지만.
최유찬:야.
너 왜 여기있어.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자유:어떻게 알고왔냐뇨? 숲 입구에서부터 발자국이 길처럼 깔려있던데. 숲에 이런 길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신기하네요.
최유찬:(아 발자국;;; 땀 삐질. 숲지기 자식 이것도 안 지우고 뭐한거야?)
아니 내가 아팠다고?
자유:집안 어른들이 그러시던데요. 어릴 때 심하게 앓았다고.
최유찬:진심 진짜로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어쩐지 나무 위에 올라가면 난리더라
아니 그래도 그렇지 묘비를 와~...
자유:그건 그래요. 우리가 결혼하고 나면 묘비는 없애버릴까요?
최유찬:지금 없애 버리면 안되냐?
자유:(헤실 웃는다.) 그것도 좋고요. 죽을 일은 없었으면 좋겠으니까.
최유찬:어. 그럼 뽑아라. (내 이름 적힌 묘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작은 묘비는 쉽게도 뽑힙니다.
이제는 납작한 돌이 된 그것을 아무데나 던지면,
그사이 눈이 쌓여 묘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최유찬:(진짜 하네..)
야.
자유:네?
최유찬:너 나랑 헤어지고 뭐했냐?
자유:뭘 했냐니요?
최유찬:나랑 아까 숲에서 헤어지고 뭐했냐고.
너가 먼저 나갔었잖아.
자유:하인 하나가 말을 걸길래 상대해줬죠. 자꾸 목욕을 하라나 뭐라나... 귀찮아서 유가로 돌아가려 했는데, 도중에 유모를 만났구요.
당신이 어디있는지 한참 찾길래, 유가로 안내해준 것도 나인데.
최유찬:야.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여?
너구나.
창용이 죽인 새끼.
창용이는 집으로 간 적이 없다는데 니가 어떻게 창용이를 만나.
자유:제가 뭐하러 그 사람을 죽여요? 하아...
최유찬:내가 유가로 갔다는 사실은 창용이랑 나만 둘이 알고 있는 사실이야.
어 나도 궁금하다. 왜 죽였냐?
자유:그야 숲에서 나가던 중에 만났죠. 아득바득 나를 붙잡아두려 하길래, 어디로 도망갔나 싶었던 건데.
뭐... 그렇게 믿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요.
최유찬:시발. 못 본 사이에 존나 버릇없어졌어.
자유:그거 칭찬인가?
자유가 다시 손등에 입을 맞춰옵니다.
덕분에 더 머리가 아파요.
최유찬:............
혼례식 예행연습이라도 하는 건가요?
자유: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이틀 후 약혼식이에요. 일주일 후에는 혼례식이고.
당신과 혼인하고 싶어서 안달난 미친 새끼로 보이죠?
최유찬:어
자유:맞으니까 몸 관리 잘 해요. 그때처럼 아프지 말고.
최유찬:넌 나랑 혼인하는게 뭐가 중요하다고
통보 아닌 통보를 내뱉고 그는 환히 웃습니다.
최유찬:웃지 말고;;
내가 이런 미인계에 넘어갈 것 같어?
자유:낭군 앞에서 좀 웃을 수도 있죠. 좋아서 그런데... 응?
그 뒤로 비현이 뛰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최유찬:기분이 참...
뭔가 지금 네가 짠 계획에 휘말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뭣같거든.
한동안 틱틱 대도 넘어가라.
너 지금 패는 거 충분히 참고 있다
자유:물론이죠, 결혼해주는 것만으로 기쁜걸요.
그보다... 숲지기가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최유찬:어. 그래보인다.
가라.
난 저 놈 좀 혼내야겠다.
멀어지는 자유의 모습을 보며 비현이 한탄합니다.
비현:이런 제길! 발자국을 지웠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도련님. 자유 저 인간에게 들켜버렸어요. 괜찮을까요.
최유찬:야임마
알면 시발 하이고 참
글쎄요. 안 괜찮다면 안 괜찮지, 더 좋아질 일은 없을 겁니다.
자유가 사라지고 나서야 주위를 살피던 비현은,
뒤늦게 당신의 묘비가 있었던 자리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선 헉, 하고 입을 다뭅니다.
비현:아...
도련님. 설마 보셨습니까?
최유찬:야
니도 알고 있었냐?
반응을 보아하니 비현은 알고 있었나 보군요?
어째 자신만 빼고 엔간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최유찬:아나 이 새끼들이 진짜
사고친 배신자 놈도 알고 있고
숲지기인 너도 알고 있고
비현:자유가 무어라 말을 했습니까? 그...
최유찬:그럼 당연히 우리 아부지도 알고 있을거고
아주 내가 개 바보지??!
내가 어렸을 때 아팠댔다!
비현:가주님께서 모르는 채로 냅두는 게 낫다고 하셔서... 죄송합니다.
최유찬:아오!!! 이 망할 영감 진짜!!
아니 난 기억에 없다니까
난 존나 건강했다고
비현:그...... (눈치 봄;;)
도련님, 기왕 이렇게 된 거 최청운님을 찾아뵙는 건 어떠실까요? 이런 이야기는 제가 함부로 할 것이 못 됩니다. 어차피 혼례식 때문에 최청운님께 알리기도 해야하는데, 그 분께 직접 묻는 것이 더 속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조용히 별장에서 칩거 중인 최청운.
당신의 큰아빠이자 그 사건 전에는 양부모였고, 전대 가주였었죠.
맞는 말이긴 합니다.
어차피 최청운의 귀에도 당신의 혼례식 이야기는 반드시 들어갈 테니까요.
최유찬:하 큰아빠......
그래 그 사람이 있었지.
어, 그래 가자.
비현:저는... 숲을 지켜야 하는데요.
최유찬:이왕 이렇게 된 거 큰아빠보고.
비현:비우가 칩거해서 숲을 지킬 이가 저밖에 없습니다.;;
최유찬:그래서 같이 못 간다고?
쓰으읍-!!!
발자국도 못 지웠으면서 잘도 숲지기 아주 그냥
비현:창... 아니, 하인에게 말을 준비해두라 이르겠습니다.
최유찬:에휴...... 알았다.
네 할일 해라.
약 필요하면 내 이름 대고 받아가고
비현:예. 감사합니다, 도련님.
최유찬:오늘 다 끝장 낸다
당신은 비현과 헤어지고 최청운의 별장으로 향합니다.
최청운은 '그 사건' 이후 1년이 채 가지 않아 결국 몸이 쇠약해졌습니다.
그리고선 형제자매인 최천량에게 가문을 맡기고 본인은 최 가에서 조금 떨어진 별장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흔들리는 가문을 복구하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말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최대한 가문을 떠받치다가 골병이 났다고들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찾아가지 않은 지도 꽤 됐군요.
자그마한 자택의 문을 두드리면,
익숙한 얼굴의 하인이 당신에게 인사하며 안으로 모십니다.
최청운은 당신을 보자마자 퍽 얼굴을 굳힙니다.
이런, 보아하니 혼례식 이야기가 이미 그의 귀에 들어갔나 봅니다.
최청운: 넌 대체 그 얘기가 나올 동안 뭘 한게야!
최유찬:?
왜 나한테 승질이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조용한 집 안을 울립니다.
최유찬:큰아빠가 뭘 했다고!
옆에서 눈치를 보던 하인도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 떨고선 눈을 감았습니다.
시작부터 호통이군요.
최청운: 천량 그 놈은 그런 헛소리도 들어주고... 정말이지.
선조 님처럼 영광스레 죽지도 못하고, 그저 늙어가며 병치레나 앓으면서 집안이 저래 되는 꼴을 보는 것도 고역이구나.
최유찬:그럼 다시 복귀해
소리 지르는거 보니까 아직 창창하고만;;
최청운: 뭐라는 거냐, 난 이제 최 가에서 떠난지 오래된 늙은이인데.
최유찬:근데 왜 내 혼인 가지고 소리질러? 나도 소리 지를 수 있어!!!!!!!!!!!!!!!!!!!!!!!!!!!!!!!!!!!!!!!!!!!!!!
최청운: 아니, 그럼 소리를 지르지 안 질러? 어디서 굴러먹다 온 종놈이라 혼인을 한다는데! 어!
최유찬:아 그건 나도 그래.
최청운: 그러면서 뭘 뻔뻔하게 찾아온 거야! 무슨 말을 하려고!
최유찬:아니 그래도 그 새끼는 욕해도 내가 욕해!!!!!!!!!!
내가 거의 키운 자유인데!!!!!
산에 옆길 뭐야?!??!?!?
나 어렸을 때 아팠어?
최청운:네가 키워? 그걸? 하이고, 어이가 없네...
숲의 옆길은 또 어떻게 찾아냈담.
전해 들은 말 그대로다. 네가 어렸을 때 크게 앓았었지. 난 그때 네가 죽는 줄 알았지. 의원조차 원인을 모르고 포기했고. 그래서….
최청운은 한참이고 말을 고릅니다.
최청운:...미리 준비한 것뿐이었다. 어차피 네가 알아봤자 기분 좋을 것은 없으니 말하지도 않았고.
그런다고 한들 벌써 묫자리가 만들어진 당신의 기분이 썩 나아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입니다.
최청운: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떠돌이 정령사를 데려왔다. 그가 와서는 말했었지, 천설 숲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고. 네가...
자유, 그 놈이 옆에 있었으니 당연한 법이지. 그 끔직한 자가.
최유찬:그럼 지금처럼 건강해졌을 때 알려주던가... 빙신처럼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몰랐잖아!
자유 그 자식도 알고 있었더라
뭐? 정령...사?
그런 약과는 첨 들어보는데
당신과 자유가 어릴 적부터 오래 지내온 것은 맞지만요.
마지막 말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최청운:약과? 어유, 이럴 거면서 뭘 물어보냐, 뭘. 우리 집안이 제과하면서 먹고사는 줄 알겠네.
최유찬:내가 가주 되면 제과 가문으로 바꿔버린다;;
정령사는 뭐야?
최청운:네가 먹을 줄이나 알지 만들 줄은 알고? 하여튼 천량 그 놈이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뭐긴 뭐야, 정령인가 뭔가... 마법도 부리고 치료도 하고 하는 자지. 심성이 좋은 나그네였다.
최유찬:(갑자기... 장르가 판타지로 바뀌는데...)
최청운:그러고보니 오랜만에 다시 마을로 온 모양이던데... 늙은 몸을 고칠 법은 없으려나. 어느 조카 놈이 약이라도 하나 지어주면 좋겠건만. 아이고, 아이고.
최유찬:(새끼 손가락으로 귀 후벼) 자유가 왜 끔찍한 자야?
큰아빠는 가주였을 때 걔가 유씨 가문 소속인거 몰랐어? 걔는 왜 내 옆에 있었어? 숲이 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뭐야?
최청운:왜긴 왜야, 어? 가문의 배신자가 옆에 있어 악영향을 받았구만.
숲이 왜 너를 못 받아들이겠어!
방금 말했지 않냐. 자유같은 인간이 옆에 있어서 너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거겠지. 그래서 지금은 몸이 무사하지 않으냐?
최유찬:아 내가 어렸을 때 아팠던 이유가 자유 때문이라고
그럼 큰아빠도 걔가 첨에 내 하인으로 들어왔을 때 유씨 가문인건 몰랐다는 소리야?
최청운:유씨 가문이고 뭐고... 어유. (한숨 푹)
최유찬:큰아빠가 무능했네....
최청운:아니, 아이고. 이 놈이 정말...
최청운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다,
천천히 눈을 뜨고선 당신을 바라봅니다.
최청운:유찬아, 너는 자유와 혼인하는 것이 좋으냐.
그래, 나야 자유 그 인간을 증오한다만…. 너는 어릴 적부터 자유와 오래 지내지 않았니.
...자유에 대한 감정은 그때와 같으냐?
그 사건이 지나고 나서 당신은 어떤가요.
여전히 자유를 좋아하나요, 사랑하나요.
아니면 미워하게 되었나요, 증오하나요.
여전히 혐오하나요.
그럼에도 정략혼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엮이게 된 것은,
정말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부부이자 동반자, 평생의 배우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만큼은…
나는…
최유찬:.... 그 새끼는 처음 내 하인으로 들어왔을때부터
내꺼였어.
갑자기 말도 없이 사고 치고 사라졌는데
주인인 내가 책임 져야지.
걱정마. 혼인하면 자유 그 놈 궁둥짝에 멍이 나도록 때려줄테니까
최청운:아이고...
결국 최청운은 고갤 대강 끄덕입니다.
최청운:그럼 이만 돌아가보거라. 나같은 늙은이랑 시간 보내지말고, 그 놈 혼례식 준비도 해야하지 않겠느냐.
근데... 켈록! 켁! 켈! 케겍! 조카 놈이! 약 하나 지어다주면 좋으련만! 켈록!
최유찬:거 참;;
꾀병아녀?
최청운:어허... 그 자가 또 다방면으로 훌륭한 자인데 너도 한 번 가서 조언을 청해보면 좋지 않느냐.
......켁! 켈록!
최유찬:.......하아, 마을에 내려왔다고? 함 가볼게. 물어볼 것도 있고.
그럼 난 간다.
큰아빠 만수무강하셔~!!!!!!!
최청운의 집에서 나오면,
언덕 밑으로 가까운 마을이 보입니다.
아마 마을에 내려가면 소문이란 소문은 다 퍼져있을 겁니다.
최씨 가의 도련님이 유씨의 그자와,
가문의 배신자와 혼인을 한다고.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당신은 마을로 향합니다.
마을로 내려가면 길을 지나갈 때마다 꽂히는 시선들이 부담스럽습니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도 하는 것이 무언가….
슬슬 불편해지려 할 때, 주책맞은 마을 주민 하나가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최유찬:쓰으으읍.... (눈 안 깔아? 눈 부릅뜨고 주민들 쳐다봐)
:도령, 어째 혼자 떨어져 계셔요? 저쪽 장신구 상점에 자유 님이 계시던데...
자유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요?
설마, 하고 헛소리이길 바랐으나 진짜로 그의 모습이 저 너머로 보입니다.
이 근방에서 제일가는 장신구 상점에 떡 하니 반지를 구경하고 있는 저 인간이요!
최유찬:쟤가 왜 저기있냐
자유:응? ......나 보러 왔어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이렇게 마음이 잘 맞다니. 궁합은 안 봐도 되겠네요.
마을로 내려가기는 개뿔...
그냥 가문으로 돌아갈 걸 그랬나요?
그러나 이미 몸을 돌리려 해도,
자유가 당신을 끌다시피 상점으로 데리고 옵니다.
자유:골라봐요. 어울리는 반지로 하나 사야죠.
최유찬:.....반지 그거 껴도 잃어버리기 쉬운데
자유:혼인반지인데 잃어버릴 생각부터 하는 거에요?
최유찬:잃어버리면 네가 또 뭐라 지랄할까 심히 걱정된다;;
자유:그럼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 좀 해봐요.
...그거 알아요? 혼인 반지는 왼손 약지에 끼잖아요.
최유찬:어
자유:왼손 약지에 심장과 직결된 혈관이 있다는 신앙에서 비롯된 거래요. 영원을 의미하는 거죠.
어렸을 적에 나한테 말해줬던 거 기억나요? 내 옆에 영원히 있으라고.
최유찬:어어. 당연히 기억하지. (내가 언제 그랬다코?)
자유:...기억 안 나? 뭐, 아팠을 때 한 얘기긴 하지만.
기억이 희미하게 날 듯 말 듯 합니다.
그것보다 그 얘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최유찬:어렸을 때 언제?
당신이 어렸을 때라면, 자유는 거의 갓난쟁이였을 텐데요.
자유:아팠을 때요, 죽을 뻔 했을 때.
그래서, 반지는 안 골라요?
최유찬:....그때 네가 내 옆에 있었다고? (미간 찌풀)
검은색 하던가.
심플하게.
자유:혼인 반지로 검은색? 뭐어... (반지 하나 집어 네 손가락에 갖다댄다.) 이거 어때요?
최유찬:시커먼게 너 같잖아.
(눈 가늘게 뜨며 빤히 쳐다보면서) 뭐어... 나쁘지 않네
자유:아, 날 닮은 걸 끼고다니고 싶어요? (헤실헤실 웃는다.)
최유찬:어. 빡치면 뭐라도 하게
자유:화날 때마다 날 생각하겠다고요? 그거 좋네요. 이걸로 해요.
최유찬:(아부지, 큰아빠 쟤 성격 이상해)
사장님, 이 반지 한 쌍 주쇼.
얼마요?
자유:반지는 내가 살테니까, 낭군께서도 예물을 준비해오세요. 가주님이 말씀하셨죠?
난... 목걸이가 좋은데.
아, 그냥 반지로 때우려고 했더니 안되는군요.
최유찬:에라이...
하기야 각자 가문에서 준비한 예물을 교환해야 하니…
최유찬:근데 예물이라는 거
반지에서부터 이미 진을 뺐는데 말입니다.
최유찬:이렇게 대놓고 준비해도 되는거야?
원래 약간 선물 같이 모르게 준비하는거 아니냐?
자유:내가 몰래 준비하고 있었는데 온 거잖아요.
그럼 형은 몰래 준비해주던가요.
최유찬:내 탓이다? 네 등치나 줄이고 말해라.
오냐 내 뒤에 따라오지 마라!
아, 이거 귀찮게 됐네...
영 피로가 몰려올 때 즈음에,
장신구 상점 너머 광장에서 작은 소란이 들립니다.
저런, 짓궂은 아이들이 웬 나그네 하나를 괴롭히고 있군요.
눈이 침침한 것인지,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를 주우려 팔을 뻗는 이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최유찬:(무슨 목걸이를 사지... 깊은 고민)
두툼한 가죽 망토를 뒤집어쓴 이가 빤히 최유찬를 바라봅니다.
아…. 도와줘야 하는 걸까요.
나그네:아이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원…
(빤히... 빤히.)
최유찬:아~! 가뜩이나 혼인 때문에 머리 아픈데 진짜...
야!!!!!!!!!꼬맹이들!!!!!!!!!!!!!!!!!!!!!!
그게 괴롭히는거냐?!!!!!!!?!??!
:헉!
최유찬:괴롭힐꺼면 어?! 다리 몽둥이 하나 뿐질러야지!!!!!
이리와!!!!!!!!!!!!!!!!몸소 보여줄테니까!!!!!!!!!!!
:무서운 도령이다, 도령! 도망쳐!
아이들은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허겁지겁 도망갑니다.
당신의 명성... 이 마을에 널리 퍼진 모양이에요.
최유찬:쯧. 괴롭힐 거면 내가 안 볼때 괴롭히던가.
당신이 지팡이를 건네주면, 그는 꾸벅 받고선 인자하게 웃으며 당신을 지긋하게 바라봅니다.
나그네:이야, 이거 고맙습니다. 안경만 제대로 썼어도…
안경을 고쳐 쓰고선 빤히 당신을 바라보던 나그네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나그네:놀랍네요, 최씨의 그 아이가 이렇게 컸다니…
당신을 알고 있는 걸까요?
나그네는 의미심장하게 지팡이를 짚은 채 눈을 감습니다.
최유찬:나 알아?
나그네:오늘 최청운 님을 만나 약도 지어드리고, 잠깐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그 분이 이야기하지 않으시던지요?
최유찬:잠깐, 이미 만났다고?
나한테는 그런 얘기 하나도 안했는데
아, 마을에 있다던 정령사가 이 사람인가 봅니다.
낡은 가죽을 뒤집어쓰고, 꾀죄죄한 옷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어째 마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싶더니.
정령사:예? 그야 이 마을에 오자마자 만나뵈었지요.
제가 떠난 이후로 많이 변하신 것 같아 저도 좀 놀랐습니다. 듣기로는 큰일이 있었다지요...
최유찬:이봐 정령사.
큰아빠 수명은 얼마 남았어?
내가 반으로 줄여드리게
정령사:......하하. 그래도 도련님 몸은 성해보이시니 다행입니다.
최유찬:시발. 조카가 약 하나 지어줬으면 어쩌구 저쩌구 하더니만. 어이가 없네 진짜
정령사:그때 보았을 때는 참 위태로워 보였는데 말입니다...
에이, 도련님도 검진 한 번 받으시라 말씀하신 거겠지요.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뜬 눈으로 몇 번이고 당신의 몸을 빤히 바라보는 정령사는 의아하다는 듯 고갤 기울입니다.
정령사:참. 그런데 여전히 좀 이상하긴 하지요. 어째 몸은 건강하긴 한데, 기운이 약한 것 같은 지 원…. 뭔가 모자른가?
최유찬:요즘 반찬에 고기가 잘 안올라오긴 해..
의아한 일입니다;;
기운이 약하니, 허약하니.
그런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자유:......난데없이 뛰어가더니 여기서 뭐해?
아, 예전에 왔던 그 정령사잖아.
정령사:당신도 얼굴이 기억나는군요. 그때도 절 꺼리시더니 여전하신가 봅니다.
자유:당연하지. 낭... 도련님이 아팠을 때 제대로 해준 것 하나 없으니까.
정령사:예, 그 때는 제가 많이 미숙하여 저 또한 반성하고 있답니다. 지금 최유찬님께서 몸이 건강하신 것은, 당신네의 천설 숲의 신이 보살핀 덕인지도 모르겠지요.
자유는 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
최유찬:(뭔개소리야)
자유:대화는 적당히 하고 예물이나 준비해요.
핀잔이나 주고선 자리를 떠나버립니다.
최유찬:저 놈이?
그런데도 정령사는 그리 기분 나빠보이지 않습니다.
정령사:이런, 그때 자유님께서 저를 참 싫어하셨답니다. 제가 실력이 모자라서 도련님을 고치지 못한 잘못이겠지요.
최씨의 도련님. 부탁 한 가지 해도 괜찮을는지요? 천설 숲에서 머물면서 숲을 관찰하고 싶어서 말이지요. 제가 전에 왔을 때보다 숲이 달라져서 연구를 좀 할까 싶지요.
최유찬:아니.... 내가 언제 아팠길래... 분명 걔는 나보다 7살이나 어린데 내가 아플 때 옆에 있었어?
야 너도 막 숲에다가 불 지르는건 아니지?
정령사:예? 제가 뭐하러 숲에 불을 지르겠습니까...;;
최유찬:그럼 됐어. 해.
정령사:그런데 제가 마을에서 천설 숲을 왔다갔다 하기에 좀 벅차답니다. 혹시 최 가에 머물러도 괜찮을지요?
최유찬:어. 널린게 빈 방인데... 그리고 큰아빠도 널 반기는 분위기고.
아부지도 너가 온다고 하면 그닥 말리는 분위기는 아닐걸.
그런데 혼례식 준비로 가뜩이나 바쁜 집안에 들일 여력이 있을까요.
최유찬:
기준치: | 50/25/10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좀 더 고민해봅시다...
최유찬:
기준치: | 50/25/10 |
굴림: | 66 |
판정결과: | 실패 |
(멍~)
생각해보니 숲지기 쌍둥이 오두막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안 쓰는 창고 같은 집이 있긴 합니다.
비현이나 비우에게 명령하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유찬:(손님을 창고에 재워도 되는건가;;;)
그... 숲 입구에 숲지기들이 사용하는 오두막 옆, 안 쓰는 집 하나 있는데.
숲 연구 할거면 거기가 좋을거야. 숲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 쉬우니까.
당신의 말에 정령사는 기쁜 듯 인자히 미소지으며 꾸벅 인사합니다.
천령: 저는 편하게 천령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우선 가면서 이야기할까요? 제가 당장 갈 곳이 없어서.
천령을 안내하며 최씨 가문으로 향하는 길을 걷습니다.
그리 먼 길은 아니니까요.
천령:제가 오기 전보다 숲이 병든 것 같던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최청운님께 들었습니다. 숲에 저주의 여파가 아직도 빠지지 않은 것이 영 독한 일에 휘말린 게지요.
최유찬:근데...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좀 회복하고 있는 것 같던데.
천령:예. 그래도 자정 작용 덕인지, 거의 나무들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걸 어느 정도 느꼈지요.
도련님, 마을 바깥에서부터 숲 안으로 이어지는 저 흰 막대들을 많이 보셨지요?
천령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길가에 세워진 흰 나무 기둥을 툭툭 칩니다.
가문의 문양이 그려진 천이 묶인 기둥은, 당신도 많이 보아온 것입니다.
천령:천설 숲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숲이 가진 마력이 어마어마하답니다. 제가 짐작건대, 보통 숲이었다면 저주에 걸리는 그 순간 한 달 내로 숲이 망가졌을지도 모르지요.
최유찬:아..............응.............. (말 많네.....)
천령:저 기둥은 특히 숲의 마력이 숲 곳곳에 잘 퍼지라고, 제가 가장 마력이 뭉치는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렇게 하면 숲 전체로 쉽게 마력이 퍼지지요.
잠깐 멈추어서서 흰 기둥을 더듬던 천령은 인상을 찌푸립니다.
천령:그런데 도련님. 혹시 최근 숲에 무슨 일이 최근 생겼나요?
마력의 흐름이 조금 흐트러진 것 같습니다.
최유찬:숲에? (얼굴 찌풀)
...... 창용이라고, 하인 한 명이 죽었어.
천령:하인이 살해당했다고요?
저런…. 좋지 않은 일입니다만, 도련님.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마음은 편하지 않을련지요?
다시 육신이 숲으로 돌아간 겁니다. 저희 같은 정령사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편이거든요. 숲 일부가 되어 최씨 가와 함께 하는 거죠. 조금은 느껴지거든요.
한때 사람이었던 존재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마력의 흐름이요.
최유찬:근데.
걔가 살인당했을 수도 있는데.
억울해서 귀신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참... 우리 가문이 관리한다고 하지만
숲은 대체 뭐하는 존재야?
천령:음, 이 기둥에 손을 대보시겠습니까?
도련님도 최씨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니, 미약하게나마 느끼실 수 있을 거랍니다.
최유찬:(정령사 찝찝한 눈으로 쳐다보며 기둥에 손을 대본다.)
천령의 말을 따라 기둥에 손을 대보면ㅡ
손끝을 타고 잔잔한 물결의 파도가 치는 것만 같습니다.
혈관에 기이한 감각이 드네요.
하지만 천령이 말하는 만큼, 그 이상의 감각은 느끼는 건 어렵습니다.
천령:이게 천설 숲이 지닌 현재 마력입니다.
고요하지요.
숲이 저주를 받고 회복되는 중이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처럼…. 이 숲은 방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답니다.
음…. 근데 조금은 이상한 것이….
천령은 잠시 말끝을 흐립니다.
천령:천설 숲이 비슷한 류의 숲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서요.
죄송합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대자연의 뜻을 함부로 헤아릴 수 없답니다.
더 자세한 건 역시 숲을 조사해보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최유찬:어. 그래라.
큰아빠랑 아부지한테 먼저 알려주지 말고
나먼져.
천령은 벌써 열의가 가득한 것인지,
아까보다 발길을 재촉해 최 가로 향합니다.
숲지기 비현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천령에게 머무를 곳을 제공해주고 나서 당신은 다시 집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창용의 죽음을 조사하였으나...
이미 치워진 시체와 매일같이 흔적을 지우는 눈으로 인해 결국 짐승에게 당한 것으로 결론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약혼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아주 옛날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앓아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열이 전신을 타고 흐르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온몸에 감각이 예민하게 솟구쳐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을 때.
고열로 목숨의 경각을 달리던 그때
당신의 옆에 있어 주던 사람은 자유였습니다.
몹시 앳된 얼굴입니다.
최청운은 당신을 바라보다 괴로운 듯 문을 나서버렸고,
하인들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거나 숲의 수호신에게 빌기만 했습니다.
오로지 당신 옆에는 자유만 있었죠.
불타는 듯 뜨거운 어린 손을 잡아주고서.
아파서 그랬을까요, 서러워서 그랬던 걸까요.
자유의 손을 잡고서 내가 무어라 말했더라.
나랑 같이 있어….
자유:네, 여기 있을게요.
전 도련님 옆에 평생 있어줄 거에요. 저 사람들이랑은 다르게.
그러니까, 도련님도 제 옆에 같이 있어줄 거죠? 평생?
그 물음에 내가 무어라 대답했던 걸까요.
그럴 거라고 약속해버린 걸까요.
그 대답을 들었던 자유의 얼굴은….
결국 날이 밝았습니다.
잠시 상념에 젖어 옛날 일을 떠올려버렸군요.
처음에는 반감으로 당신의 편에서 걱정을 하던 늙은 하인들은 묵묵히 받아들인 듯 약혼식과 혼인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젊은 하인들은 유씨 가문의 권세에 푹 빠진 듯 들떠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약혼식은 유씨의 저택에서 어째 별 탈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뭐, 최청운은 참석하지 않았으니까요.
최천량은 능구렁이답게 유씨의 가주와 어느덧 친해진 듯 술잔을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예물을 준비하는 것을 깜빡했으나...
다행히도 약혼식 때는 유씨 가문에서 먼저 최씨 가문에 예물을 주는 것으로 한숨 돌렸습니다.
자유는 당신의 손끝에 입을 맞추고선,
뻔뻔스레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이대로 혼례식이 지나면 완전한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겠죠.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자유가 당신에게 속삭인 말은 그대로 당신에게만 전해진 채 묻혔습니다.
자유:영원히 함께해요, 우리.
앞으로 며칠 뒤면 배우자이자 평생의 반려가 될 자유는 누구보다 기뻐보입니다.
최유찬:.....하루 세끼 꼬박 밥이 나와야 하고 반찬은 고기 5종에 나물 반찬은 딱 하나야 한다 안 그러면 파혼이야 너...
자유:낭군께선 바라는 것도 많지. 걱정하지 말아요. 먹는 게 부실해선 나도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리고 한동안...
정략혼인의 상대가 되어버린 당신에게 몰려드는 시선과 질문세례를 감당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자유도 다른 사람들에게 붙잡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네요.
잠시 저쪽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이쪽이 한숨 돌려야겠습니다.
유씨 가문의 난간으로 나오면,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길게 뻗어진 복도가 보입니다.
난간과 복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최유찬:아... 이런 자리는 딱 질색인데... (난간 살펴본다.)
어디선가 두 사람의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들리는 소리의 방향을 쫓아가니,
난간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녀의 모습이 보입니다.
여긴 2층이니, 1층 야외에서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유씨와 최씨가 함께 사돈 관계를 맺으면 상당히 양쪽에 이득이겠네요. 아쉬워라, 유씨 가문은 가뜩이나 다른 가문들도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던데….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런데 여보, 당신 자유라는 그분…. 얼굴 본 적 있어요? 왜 유씨 가문에 있으면서 난 처음 보는 것 같은 지 원.
당신, 몰랐소? 그 인간 원래 최씨 가에 있다가 나온 사람으로 유명하잖소. 왜, 유씨 가문에서 받아주긴 했는데. 유씨에서 얼굴을 직접 보는 건 나도 처음이구려. 희한하게도.
듣자 하니 친척이라고 들었는데. 저런 이가 원래 있었어요? 그럼 왜 최씨에서 지냈던 건지.
뭐, 우리가 그리 떠들어봤자 다 지네들끼리의 사정이 있는 게 아니겠소.
두 사람은 자기들끼리 소문을 떠들어대다가,
이윽고 가마를 타고 돌아갑니다.
자유가 유 가와 어느 정도 혈연관계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요.
의아하게도 유씨과 국경 하나를 두고 떨어진 것도 아닌데,
왜 자유가 이렇게 가까운 위치에 있는데도 알지를 못했을까요.
최유찬:그러니까... 왜 유씨 가문의 혈연관계가 하필 최씨 가문 하인으로 들어왔었냐고...
하, 조만간 자유 잡아다가 다 실토해라 시켜야지
(복도로 나간다.)
다시 느끼는 거지만,
최 가와는 확연하게 다른 이 분위기가 낯섭니다.
꼭 필요한 공간으로만 이루어진 최가의 저택과 다르게, 이곳은 곳곳 복도마다 치장품들이 넘쳐납니다.
아름다운 명화부터 값비싼 장식품까지.
그런 것들에 정신을 팔아 하나하나 감상하며 걷다 보니 이런,
그만 복도 안쪽까지 들어와 버렸습니다.
이젠 정말로 돌아가야겠네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이런. 그만 다른 문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저택이 넓어서 길을 잘못 든 걸까요?
바깥과 이어진 문인건지, 발을 내딛자마자 어둑한 달빛이 유일하게 어둠을 비춥니다.
최유찬:(당당하게 걷는다)
밤이 금세 깊어진 시간이라, 밖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류하 강이 저 너머로 흐르는 것을 보니, 여긴 정원 같습니다.
정원보다는 하나의 뜰이라고 해도 다를 건 없지만요.
최유찬:(최씨 가문 정원보다 볼게 없....많네. 하......)
아름답게 관리된 꽃들과 거대한 연못은 보기만 해도 최씨와 반대되어 더 눈길이 갑니다.
뭐…. 잠깐만 숨 돌릴 겸 구경하고 가도 괜찮겠죠?
정원을 둘러보면 가장 구석에 한가득 쌓인 국화가 놓인 곳,
그리고 정원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연못이 눈에 띕니다.
최유찬:국화? (국화 살펴본다. 여기 묘지 있어?)
유독 구석에 국화들이 많이 놓여있습니다.
꼭 추모하는 공간처럼요.
가까이 가보면 정식 묘비보다는, 그저 작게 마련된 묘지 안에 여러 이름이 묘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처음 듣는 이름이라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애초에 유씨 이름이 보이지도 않지만요.
가장 중앙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가문의 번창을 위해 희생당한 모든 가문의 이들을 기리며'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최유찬:가문의 번창.... (미간 찌풀) 그래... 이정도로 큰데 꾸리꾸리한 게 없으면 이상하지
(연못을 살펴본다.)
수국이 물에 둥둥 떠 있습니다.
수국을 만지작거리며 연못 밑에 손을 담그면 물은 따뜻합니다.
이곳은 최씨 가의 지역에 비해서 날씨가 온화하죠.
같은 지역에서도 이렇게 기후가 다르다니 참….
좋게 말하자면 사람이 살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유씨 사람들 성정이 좋은 것도 이런 것에 한몫하려나요.
자유는 빼고요.
물에 손을 담그고 휘젓다 보면,
최유찬:진짜 어쩌다 그런 능구렁이가 태어났냐
작은 막대 하나가 손에 잡힙니다.
최유찬:? 뭐야
이건….
천설 숲에서 흔히 보았던 마력 기둥의 축소판 같네요.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천도 똑같이 손에 휘감겨져 옵니다.
다만 이 문장은 유씨의 것입니다.
이게 왜 여기 연못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최유찬:분명 마력을 고르게 잘 퍼지라고 이걸 박는다고 말 많은 자식이 그랬었는데
근데 이걸 왜 연못 안 쪽에 박아두냐
물에 썩겠네. (연못 앞 땅에다 친히 박아준다)
이게 최씨 가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유씨 가문도 쓰네
최유찬:
기준치: | 70/35/14 |
굴림: | 4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연못을 좀 더 들여다봅니다.
연못 위 다채로운 색의 수국 머리들이 동동 떠다니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길이 닿으면, 이리저리 수국은 흔들립니다.
수국을 해치다 보면 손끝에 딱딱한 물체가 닿습니다.
수없이 만개한 수국을 해치고,
그사이에 숨겨진 물건을 물속에서 꺼내보면….
커다란 유리함 안에 다른 유리함으로,
그렇게 몇 겹이고 겹겹이 쌓인 유리관 안에,
알 수 없는 액체에 담긴 채로
심장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최유찬:
기준치: | 76/38/15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에이 심장이네(ㅋㅋ)
............
왜?
(소오름)
놀라서 떨어트릴 뻔했습니다.
다행히도 물 안으로 가라앉으니 깨질 일은 없을 테지만요.
최유찬:(이거 움직이고있는거야?펄떡펄떡?????)
저렇게까지 견고하게 만들어진 물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모형이라고 하기엔 저건 살아 숨 쉬고 있는데요.
이유 모르게 역겨움이 올라오기도,
기이함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입니다.
어째서 이런 것이 이 유씨 가문,
연못의 수국 밑 가라앉아있는지 도저히….
그리고 풀밭을 해치고 저 뒤에서 자유가 당신을 향해 다가옵니다.
자유:여기서 뭐 해요?
최유찬:(화들짝 놀라 심장 등 뒤로 숨긴다.) 어?어?
자유:뭘 그렇게 놀라요? 새삼스럽게.
최유찬:인...기척 좀 내라!! 넌 옛날에도 그렇고 어? 나 등장해요 하는 분위기가 없어?!
자유:앞으로 평생 볼 건데, 이제부터 익숙해져요.
최유찬:저,저거 막대기. 저거 유씨 가문에도 있는거였어?
자유:네? 이건 원래 가문마다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마력이 서로 이어져 원활하게 돌아가라고...
그런데, 저게 왜 밖에 나와있지?
연못에 잠수하기라도 했어요?
최유찬:아니, 그 그냥 보여서 뽑아봤는데
자유:그게 보였다고요...?
그때, 빠르게 정원을 향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최유찬:어, 내가 최씨 가문 매의 눈이야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최유찬:
기준치: | 75/37/15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75/37/15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이 지나왔던,
그리고 자유도 들어왔던 열린 문 너머의...
어둠 사이에서 누군가가 발을 딛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자유의 뒤에서 칼날이 어둠을 뚫고 빛나며,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옵니다.
비우:도련님, 물러나세요!
최유찬:??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만 같은 기세로,
새파랗게 질린 비우가 자유를 향해 장검을 들이밉니다.
잠시 당신을 향했었으나,
도련님임을 알아차리자마자 자유에게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아니, 비우는 분명 숲에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비우:저…. 저 사람은, 저 사람은 죽여야 해요! 제, 제가…. 제가 봤단 말이에요. 비현한테는 말을 못 했지만.
최유찬:너가 왜 여기있냐.
야 그거 내려놔.
비우:그때 자유 저 인간이 죽어가는 창용 씨 옆 서 있었다고요! 그 인간 말고 도대체 누가 죽일 수 있냐고요!
최유찬:너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
비우는 손을 벌벌 떨면서도,
최유찬:유씨 가문에서 사고를 칠 셈이야?
검을 내리지 않습니다.
최유찬:너 누구 가문 소속이야. 행실 똑바로 안해?
비우:도, 도련님... 도련님, 비현과 이야기했잖아요...
저.. 저도 들었어요. 자유 저 사람이, 우리 숲의 옆길도 알고 있다구요... 그러니까 창용 씨도 죽인...
자유:넌 그저 내가 창용 옆에 서 있는 걸 보기만 했지. 죽이는 건 보지 못했어. 본 것과 네 상상은 똑바로 구분해서 말하지그래.
비우:ㄷ,닥쳐!! 그럼 도대체 창용 씨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데?!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최유찬:야, 너희 둘 나 무시하지 마라
결론은 자유, 너 창용이 옆에 있었던 건 맞냐?
자유:죽는 걸 옆에서 지켜본 것 뿐이에요.
최유찬:왜?
자유:무슨 이유를 묻는 거에요? 왜 도와주지 않았냐고?
최유찬:어.
창용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가문에서 일해왔어. 너도 어릴 때 같이 있었잖아.
자유:그건 그거고, 내가 왜 살려줘야 하는데요?
그래봤자 내가 다치게 했으리라 의심했을 거면서...
최유찬:(그건 맞음.) 하.... 그래, 그럼 비우 너.
아무리 시발, 자유가 의심스러워도 그렇지
냅다 유씨 가문. 그것도 혼인식인 지금 달려와서 칼을 꺼내들어?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여기에 유씨 가문만 있어? 다른 가문 집 사람들이랑 주민들 다 있는데.
내려놔.
비우:하지만, 하지만......
비우가 숨을 삼킵니다.
최유찬:자유는 내가 존나 혼낼테니까
그의 시선이 거칠게 흔들리다가,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유리함을 보자마자 안색은 더 창백해집니다.
최유찬:내 남편을 니가 왜 혼내? 얜 나랑 같은 위치인데
헉, 허억 -.
최유찬:상하관계 안따져??
어,어?
몇 번이고 숨을 몰아쉬던 비우의 손끝의 떨림이 멎었습니다.
비우:안 돼요, 배, 배신자...
당신이 최씨 가문을 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푹ㅡ
칼날이 자유의 몸을 찌릅니다.
그대로 자유가 비틀거리다가, 맞은편의 나무에 쓰러지듯 기댑니다.
비우는 몇 번이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장검을 떨어트립니다.
비우는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최유찬:야,야!!!!! (소리지르다가 입을 틀어막는다)
비우:도, 도련님...
저 인간을 믿지 마세요... 죄송해요...
한발 늦게 사람들이 정원으로 돌아와 상황을 보자마자 하인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그대로 비우는 몸을 돌려 도망쳤습니다.
최유찬:(아오 저새끼는 숲지기 제명이다)
최천량: 비우 저 놈이?! 젠장,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우를 쫓아! 날 따라와라!
유수은: 자유ㄴ..., 자유, 최 도령! 두 사람 괜찮나요?!
자유의 옷을 더듬어, 그 겉을 만지면….
가슴을 타고 피가 조금씩 흘러내립니다.
자유는 인상을 찡그리며 작게 고갤 끄덕입니다.
최유찬:
기준치: | 75/37/15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칼날이 가슴에 박힌 것 같습니다.
그것도 심장 부근에….
그런데.
어째서 피가 흐르는 양이 적지?
유씨 가문의 사람들은 마치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급하게 지혈을 하고 자유와 당신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이느라 바쁩니다.
자유의 방에 그를 부축해 바닥에 눕히고,
다른 이들이 급히 상황을 정리하느라 바빠,
자연스레 자유의 옆을 지키는 것은 당신이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이제 인연을 맺었기에 배려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유찬:(.....뭔가 상황이 반대가 된 기분인데)
원하든 원치않든 간에요.
:최 도령님, 저희는 일단 간단한 응급처치는 다 했으니 자유님을 좀 지켜봐 주시겠습니까?
그…. 최씨 가의 하인이 벌인 일이 있으니 말입니다.
무거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차라리 최유찬님께서는 여기 계시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최유찬:......(차기 가주인 내가 가면 안되나... 하인 한번 보고 자유 힐끔 본다.) ... 어. 가라.
최씨 가의 하인이, 유씨 가의 사람이자 차기 가주의 부인을 총으로 쐈으니 당연한 소리긴 합니다.
비우가 이런 식으로 약혼식의 끝을 마무리할 줄은 몰랐습니다만….
조용한 방 안에 자유와 단둘이 남으면,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조금은 따끔합니다.
그의 시선도요.
처음 들어와 보는 방입니다만,
자유의 방은 당신의 방보다도 훨씬 넓고 고풍스럽습니다.
잘도 지내고 있었군요, 이런 방에서.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방금 전 있었던 일이겠죠.
최유찬:...... 아프냐? (손으로 자유 심장 꾹 눌러본다)
분명 칼날이 심장을 관통했음에도,
그는 이상할정도로 멀쩡해보입니다.
자유:......할 말은 그게 다에요?
최유찬:(어떻게 살아있냐...;;)
자유:당신한테 들키고 싶지는 않았는데...
최유찬:그럼 이 상황에서 내가 뭘 물어봐야 하냐. 왜 살아있냐고?
자유는 자신의 심장 위로,
당신과 손을 겹치며 쓰게 웃습니다.
자유:그러게요, ......
배려해주는 거에요? 아님, 고민 중인가.
최유찬:......그냥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런거거든..!
뭘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야?
자유:......제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자신 있어요?
최유찬:일단 말 해봐
자유:너무해, 약속도 못 해줘요?
최유찬:듣고 빡쳐도 안 때리겠다는 건 약속할게
자유:(그래요, 하고 가볍게 웃는다.)
...제 몸 속에는 심장이 없어요.
과거에, 저주를 받아서... 살기 위해 심장을 천설 숲에 두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거에요.
아, 걱정은 하지마요. 심장은 내가 못 찾을 뿐이지, 아주 안전하게 그 숲 어딘가에 묻혀있을 테니까.
그래서 내 몸에 이렇게 구멍이 뚫려도…. 심장에 직접 피해가 가지 않으니 살 수 있는 거죠.
최유찬:.............(황당해서 말이 안나옴)
.....언제부터?
심장을 빼고 다녔.......냐?
자유:......아주 오래 전부터요. 천설 숲에서 잃어버린 내 심장을 찾아다니고 있었죠.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서 묻어나오는 깊은 피로감을 느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유찬:그럼 3년 전에 숲에 불을 지른 이유가 네 심장을 찾기 위해서 지른거냐?
자유:그건... 다른 이유예요. 나도 그러려던 게 아닌데.
최유찬:다른 이유 뭔데.
그래요, 숲에 저주를 걸고 가문을 배신한 이가...
그의 입으로 말할 주제는 아니잖아요.
이유모를 화가 들끓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그건......
그리고 동시에,
천설 숲에서 심장을 잃어버렸다면.
유씨 가의 연못 속 심장은 대체 누구의 것인지.
의문의 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최유찬:야 그러면....
에라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온 것은 유씨 가주의 외동딸, 유수현입니다.
최유찬:누구냐.
유수현: 대화 도중 실례합니다, 최유찬님. 최씨 가에서 돌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 대신 전하러 왔습니다. 이제 자유님도 몸은 많이 나아지신 것 같으니, 여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곧 혼인하실 상대의 몸을 걱정하시는 마음도 잘 알겠지만….
우선 최유찬님도 돌아가 보셔야 하지 않으시겠어요.
최유찬:(비우 그 자식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한데.. 아 근데 자유 얘한테 물어볼 건 많고..... 누워있는 자유 겁나 째려봄)
너... 도망가지 마라.
튀면 진짜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잡는다
자유:내가 어딜 도망가요, 낭군을 두고.
최유찬:어, 기다려라. 일 다 끝나면 다시 올테니까.
(최씨 가문으로 돌아간다.)
자택 밖에는 이미 가마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태운 가마는 그대로 유 가에서 멀어져,
다시 설원으로 향합니다.
익숙한 눈밭을 밟으면, 복단이 마중나와 있습니다.
복단: 도련님! 자유 상태는 어떻던가요?
최유찬:괜찮아. 아직은 살아있어.
복단: 몸이 괜찮아요? 어휴…. 그걸 다행이라고 봐야 하겠죠.
최유찬:근데 조만간 나한테 죽을 수도 있어
복단: 네?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최유찬:하는 행동이 뱀 한마리라니까
진짜 얄미워.
복단: 아이고, 그리고... (슬쩍 눈치 본다.)
최유찬:아무튼, 집 분위기는?
복단: 비우는...아직도 못 찾았어요. 도망치고 나서 어디로 간 건지, 참…
비현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최유찬:비현 잡아다가 잘 캐물어봐. 쌍둥이인데 분명 통하는게 있을걸
복단: 우선 도련님, 방에서 좀 쉬세요. 도련님도 너무 오래 밖에 있으면 몸이 안 좋으실까 모셔 오라 한 거랍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선 본가에 있으셔야죠.
복단의 독촉으로 다시 오랜만에 당신의 방 안으로 들어서면,
오랜만에 맞이한 방 안은 웬일로 공기가 따뜻합니다.
미리 방을 데웠네요.
복단: 이제 곧 있으면 이 방도 쓸 일이 없을 거랍니다. 방 청소도 미리미리 해두셔요.
복단은 마지막으로 잔소리를 하고선 문을 닫습니다.
이제 혼례식이 끝나면, 이 방은 너무 작으니까요.
가주의 방을 물려받아 함께 살게 될 겁니다.
오랜만에 옛날 짐이나 정리하면서 마음이라도 좀 가라앉혀볼까요.
당신의 방 안은 적막할 정도로 넓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방입니다.
굳게 닫힌 창문 사이로 가끔 덜컹거리며 찬 바람이,
가지런하게 정돈된 책상 위는 서랍장까지 먼지 하나 없습니다.
책장은 좀 정리해야겠습니다.
여기저기 종이를 책 위에 꽂아 넣어 정신이 사납네요.
최유찬:깨끗하기만 한데...
창문, 서랍장, 책장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하인이 치워두었음에도 지저분합니다;;
최유찬:(책장 먼저 살펴본다.)
책 여기저기에 종이들이 꽂혀있습니다.
한창 바쁠 때 제대로 정리를 하지 않은 탓입니다.
보아하니 이번에 새로 그린 천설 숲의 전경인가 봅니다.
매년 새로 화가를 고용해 그리면서,
숲지기들의 도움을 받아 숲의 전체적인 풍경을 완성합니다.
얼마나 숲이 변화하는지 지표로 쓰이니까요.
책장 가장 왼쪽에 숲의 그림들이 끼워져있습니다.
확실한 건 3년 전, 그 사건 이전과 그 이후로 전경이 갈린다는 점이죠.
숲의 나무들이 많이 시들고 위축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에서야 숲이 좀 나아진 것 같지만요.
최유찬:
기준치: | 75/37/15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역대 전경들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년 같은 달에 그렸는데도, 지면에서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3년 전 전경은 어째 눈보다 흙이 많이 보입니다.
아, 생각해보니 3년 전 꽤 큰 지진이 있었죠.
그것 때문에 땅이 한 번 뒤집힌 적이 있긴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훑어보면 특히 숲의 최중심부 주변으로 회복되는 것이 보입니다.
최유찬:(서랍을 살펴본다.)
서랍을 열어보면 그동안 쓰지 않았던 잡동사니들이 하나씩 들어있습니다.
이것들도 아마 창고행이겠지요.
첫 번째 단과 두 번째 단이 있습니다.
최유찬:(첫 번째 단 열어본다.)
하나씩 꺼내서 확인해보면 하나같이 자유와 만들고 놀았던 것들입니다.
아, 어쩐지 굳게 잠겨있다 싶더니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요.
솔방울로 만든 장난감부터 단풍잎, 목재를 깎아 만든 새 모형까지…
최유찬:
기준치: | 40/20/8 |
굴림: | 2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릴 때 만들었는데도 누가 만든건지...
시중에 파는 것처럼 완벽한 마감입니다.
그 틈에 호신용 단검도 하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유는 천설 숲을 좋아했던 걸까요?
한때는 같이 가문 밖으로 나가 여행을 떠나자는 당신의 치기 어린 말에 자유는 분명.
자유:안 돼요, 도련님. 저흰 함께 천설 숲에 있어야죠. 가주님께 혼나실걸요...
그는 단 한 번도 당신에게 천설 숲을 떠난다는 선택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일말의 여지조차도.
최유찬:(호신용 단검 슬쩍 챙긴다.) 여행 좀 같이 다녀요 한번 해주는게 그렇게 어렵나
(두 번째 단 열어본다.)
어렸을 적, 가주 교육을 받던 도중에 쓴 필기인가 봅니다.
보아하니 가주들에게 항상 가훈처럼 전해져오는 구절을 옮겨 적었군요.
이런 가훈이 대대로 전해 내려와서 그런 걸까요.
예전부터 최씨의 모든 가주들이 고집이 세고 저돌적인 면모가 없잖아 있긴 했습니다.
뭐, 안 좋게 말하자면 한 성깔 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최유찬?
최유찬:사나이가 한 번 정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
근데 나는 좀 아부지랑 큰아빠 보다는 성격 많이 죽은 듯
음... 그런 걸로 합시다.
최유찬:(창문으로 다가간다.)
당신의 방에서는 숲의 광경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천령을 만나고 나니,
그동안은 자연스레 보이지 않았던 흰 기둥들이 숲까지 이어진 모습이 새롭습니다.
천설 숲에서 심장을 잃어버린 자유.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심장에 대해 의연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최유찬:
기준치: | 50/25/10 |
굴림: | 62 |
판정결과: | 실패 |
자유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에 나타난 것도 숲과 관련 있을까요?
그 어떤 일이 있음에도 천설 숲은 조용합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천설 숲의 풍경화와 창밖의 숲을 비교해보면.
3년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수준입니다.
하지만….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문득 엄습했습니다.
그리고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겸인 국단입니다.
최유찬:들어와.
국단: 도련님. 차를 준비해왔습니다만…
아, 풍경화를 보고 계셨습니까?
차를 내려놓고선 국단은 옆으로 다가와 상념에 젖은 듯 그림과 숲을 번갈아 봅니다.
최유찬:(과자는 없나. 두리번) 어, 많이 달라졌지
국단: 그래도 지금은 숲이 많이 회복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분명 숲의 수호신께서 도우신 거겠지요.
다과는... 밤이 늦었으니 자제하시지요. 이만 주무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최유찬:아직 잠이 오지는 않는데
국단: 잠이 안 오신다면…. 이 겸인이 예전에 종종 들려주던 숲의 신 이야기라도 들면서 주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잠이 오지 않는다고 떼를 쓸 때면 국단은 종종 최유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그 사건 전까지는 자유가 그 담당이었지만요.
최유찬:하! 참나
게다가 사실은, 그냥 자기 싫었던 거였지만...
최유찬:국단 내 나이가 몇인데
(침대에 냉큼 들어간다.) 근데 뭐 들어서 나쁠 건 없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나긋나긋한 집사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국단: 숲의 수호신은 천설 숲에 사는 신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는 인간의 형상을 한다고 불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를 동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또는 염소라고도, 사슴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요.
숲의 수호신은 이 숲을 관망합니다.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면서.
때로는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처벌을 내리고.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축복을 내립니다.
그것을 헤아리며 감내하는 것이 최씨 가의 사람으로서 무릅…
그 뒷말은 더 들리지 않습니다.
최유찬:(드르렁)
오늘 있었던 일에 피로가 쌓여서인지,
그냥 재미가 너무 없어서인지...
순식간에 졸음이 쏟아와 눈이 감깁니다.
눈을 뜨면 온통 새하얀 설원입니다.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면 숲인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온 기억이 없습니다.
발밑을 내려다보면 온통 시체투성이입니다.
무언가에 뜯어먹힌 듯 잔인하게 죽어버린 사람들.
본능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리는 먼저 움직였습니다.
이미 싸늘하게 죽어버린 시체들에게서 도망쳐 죽을 각오로,
천설 숲을 향해 달리다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무엇하나 제대로가 아닌 피와 멍투성이인 몸을 내려다보면….
당신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합니다.
복단: 도련님!
최유찬:.......!
허억.
급하게 몰아쉰 숨과 함께 당신은 눈을 뜹니다.
아, 또 그 악몽이었군요.
혼례식 전날까지 매일 똑같은 악몽을 꾸었습니다.
복단의 안색이 창백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최유찬:왜에...뭔데.. 또오...
복단: 도련님, 도... 돌아왔어요. 비우가 숲에 있으니까... 어서, 어서 가보셔야 해요! 도련님을 찾고 있는데, 너무 많이 다쳐서......
비우가 돌아왔다고요?
당장 가봐야겠습니다.
복단의 뒤를 쫓아 숨이 차오를 때까지 숲을 달립니다.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의 공기가 시린 듯 폐에 스며듭니다.
숲지기의 오두막 앞.
어느덧 뚝뚝 흘린 피로 이어진 길 끝에 비현과 비우가 있습니다.
비현: 도련님, 비우가......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안색입니다.
비현의 품에 안긴 채 숨을 몰아쉬는 비우의 몸에는 수없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칼에 찔린 걸까요, 짐승한테 당한 걸까요.
그 옆에서 비우를 치유하던 천령은 고갤 젓습니다.
천령: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이건 저도 더는…
최유찬:야, 누구야.
누가 그랬어.
이것만 딱 말해
비우는 떨리는 팔을 뻗어 당신의 옷깃을 잡습니다.
최유찬:너 시발 나한테 잘못한거 존나 많지?
비우:도련님......
이제 동안 말씀드리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얕은 숨결이 입김으로 흩뿌려져 사라집니다.
최유찬:시발~ 뭐 새삼스럽게. 이 나이동안 내 묘지 있는 것도 몰랐는데 말해!
비우:3년전, 이 숲에 닥친 저주를 뿌린 것은...
불과 지진이 나고, 나무가 메마르도록 한 것은, ......저희에요.
최유찬:(옆에 비현 겁나 쳐다봐)
비우:전 가주님께서 자유를 죽이라 명하셨고, 제가 차마 하지 못하자 창용 씨가 찌르셨지요.
그 피가...
그 자의 피가 숲에 떨어지자, 독처럼 저주가 퍼졌어요.
비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듯한 그의 속삭임이 천설 숲의 바람에 묻힙니다.
비우:죄송해요, 도련님...
이제동안 그 일을 숨겨온 죗값을 받는 것 같아요.
최유찬:어 존나 잘못한 짓 했네
비우:저는 먼저 숲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유모, 이제 그만 도련님께 이야기를 해드리세요...
그리고 도련님, 당신의 손으로 모두 마무리해주세요.
미안해, 누나...
비현: 도대체 무슨 소리야. 비우야, 비우! 안 돼…. 숨이….
비현이 몇 번이고 비우의 몸을 흔들어보았음에도, 더이상 그의 숨은 입김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요한 천설 숲 만이,
또다시 최씨의 사람들 인도할 뿐이었습니다.
그 바람 소리만이 남겨진 세 사람을 지나 숲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째서.
최유찬:
기준치: | 76/38/15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뒤에서 이를 바라보던 복단은 주저앉은 채 눈밭에서 낮게 탄식을 내지릅니다.
복단: 아아, 어째서 이런 일이…! 이게 그 날의 죗값이란 말인가요….
복단은 충격에 빠진 듯 한참이고 제대로 말을 내뱉지를 못합니다.
천령은 비우의 눈을 감겨주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습니다.
최유찬:...... 하, 복단.
알고 있었어?
복단: ......그야, 저는... 흐윽... 흑...
천령: 제가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보통 사람의 피가 숲에 튄다고 해서 저주가 퍼질 리는 없습니다.
숲의 마력으로 환원되어야 할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면…
보통 숲을 매개체로 무언가 의식 같은 걸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에서 방해가 있어 의식이 망쳐졌다면, 왜 숲이 이렇게 됐는지 알 것 같기도 하군요.
도련님, 저도 계속하던 조사를 거의 마무리 지었으니, 최청운님께 이야기를 들어보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분께서 가장 잘 아시지 않겠어요?
최유찬:전 가주가 자유를 죽이라고 시켰고, 근데 그걸 창용이가 하다가 숲에 저주가 일어났고
아.........시발..........존나 머리아프네.........
복단 정신차려....
천령과 복단의 말대로, 직접 최청운의 집에 가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들어야겠습니다.
왜 자유가 배신자 취급을 받고 가문에서 쫓겨난 것인지.
어째서 숲에 저주가 퍼진 것인지.
그저 두리뭉실하게 포장되었던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최씨에 내리던 눈이 멈추었습니다.
비우가 흘리던 피도, 어느새 멎었고.
그 피를 머금었던 눈은 온데간데없이 땅속에 혈관처럼 돌겠죠.
최유찬:(큰아빠 집으로 존나 뛰어간다. 오늘 끝장낸다.)
최청운의 집으로 향하면 어느새 해는 밝고 아침입니다.
평소보다 더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하인마저 잠이 들어있는 것인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조용합니다.
단출한 집입니다.
기껏해야 서재 겸 거실이 하나, 하인이 쓰는 방이 하나, 그리고 최청운의 침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실을 둘러보면 책상 위에는 책 한 권이 놓여있습니다.
무언가 찾기라도 했던 걸까요?
책장이 조금 어지럽혀져 있습니다.
최유찬:(책 훑어본다.)
뭐 이런게 다있냐
최유찬:
기준치: | 60/30/12 |
굴림: | 1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한편 책을 들추면 그림 한 장이 떨어집니다.
가족사진으로 보입니다만,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최청운, 최천량, 창용, 복단, 그리고 숲지기 쌍둥이의 부모들까지….
이건 이전 대의 최씨 가의 모습을 그렸군요.
한가운데에 있는 두 사람은 최유찬의 조부모님입니다.
...그런데 왜,
가장 구석에 자유의 모습이 있는 걸까요?
심장을 꺼내면 죽일 수 없는 존재가 되는 자.
어째서인지 자유가 떠오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최청운이 침실에서 나타납니다.
최유찬:(연하남이 아니라 조상남이였네 이거;;)
최청운:너에게 보여주라고 끄집어낸 것들이다.
최유찬:참 빨리도 알려주네
최청운:약혼식에서의 일 들었다. 비우가 자유를 찔렀다고 했지.
그것뿐만 아니라 더 한 일도 있었죠.
비우가 죽으면서 남긴 말. 그리고 복단이 말해준 이야기들….
최유찬:왜 자유를 죽이라 시켰어?
최청운:그 책은 가문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져오던 주문이다.
왜겠느냐, 그 주문을 그놈이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설 숲 한가운데서!
최유찬:그 죽지 않는거?
아니 그게 왜 어때서
최청운:정령사를 떠나보내고나서, 자유의 뒤를 밟았을 때 깨달았지...
주문이 금기시된 이유는 바로, 본인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어. 강제로 영생을 살게 만들 수 있단 말이다.
유찬아, 그놈이 3년전 밤. 네가 앓는 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니.
최유찬:기억 안 난다니까...
...........
에이 설마ㅋㅋ
최청운:지금 웃음이 나오느냐!
최유찬:(유리관 꺼내) 아,이거...?
최청운:네 심장을 분리해서 다른 곳에 놔두는 짓이었다... 응?
최유찬:이거 내꺼야......?
머리가 아픕니다.
최청운은 당신의 손에 들린 유리관을 봅니다.
유씨 가문의 정원 연못 한가운데,
깊게 보관되어 있던 것.
그건 아마...
나의 심장.
최유찬:
기준치: | 76/38/15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최청운:최유찬. 그 놈이 언제부터 너와 함께 있었는 지 기억 나느냐?
최청운은 돌연 듯 당신에게 묻습니다.
생각해보니 자유와는 언제부터 함께 했었죠.
최유찬:언제긴... 내가 어렸을 때..
7살 연하인 것은 확실한데,
가장 오래된 기억에도 그는 당신의 곁에 있었습니다.
최청운:그 놈은 내가 최씨의 가주가 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자다. 무슨 저주라도 받은 건지, 불살의 삶을 살고 있지.
심장이 없었기에 죽을 수 없었던 것.
그것이 불살의 흔적 중 하나였군요.
최청운:그는 오랫동안 가주들에게 숲의 신이라 불리었다. 내 선조가 그를 최 가에 지내게 했지. 나 또한 그러했기에 자유가 방랑하다 돌아오면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주었다.
외형을 바꾸는 주문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도 했고. 너와 함께 지내게 한 것도, 그가 조금은 외로워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청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갑니다.
어느덧 그 손은 옅게 떨고 있었습니다.
최청운:숲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어째서 최씨의 차기 가주에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최유찬.
그 날 내가 그 인간의 눈을 보았을 때…
그건 숲의 신이라 불리는 자가 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지.
창용와 비우가 죽은 것도 분명 그 날, 숲에 저주가 퍼진 것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긴 이야기를 끝낸 최청운은 상당히 지쳐 보였습니다.
한편 당신의 머리는 어지럽습니다.
심장 없이 불살의 존재로 살아가며, 몇 년인지 헤아릴 수도 없이 존재하였던 자.
숲의 신이라 한때는 불리기도 했으나,
최유찬:(근데..... 결국 창용이랑 비우가 잘못한거 아님? 따지고 보면 큰아빠도 잘못했으니까 이제 죽을 대상은..... 큰아빠 빤히 바라봄)
지금은 한낱 배신자가 되어버린 존재.
무엇이 진짜 그의 모습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는 도대체 당신의 심장으로 무슨 짓을 하려던 걸까요.
최유찬:자유가 왜 그랬겠어.
걍 내가 좋았나보지
좋아서 내가 죽지 않기를 원했나보지
그래서 내 심장 꺼냈나보지
존나 간단하지 않음?
최청운:하... 이런 단순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서 그 놈이 너를 고른건가.
최유찬:아니 걔가 내 심장으로 뭘 팔아먹기라도 해 뭘 해;;
최청운:어휴, 아이고...
최청운은 뒷목을 잡더니...
최유찬:내가 아팠던 게 어린 시절이 아니라 3년 전이였다니
이내 당신의 손에 낡은 열쇠 하나를 쥐어줍니다.
최유찬:뭔데?
정교하게 장식된 은 열쇠는 최씨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최청운:이 열쇠는 가지고 있는 자가 최씨 가의 가주임을 증명한다.
아직 네 아버지한테도 안 준 것을...
최유찬:(큰아빠 물러났다며? )
최청운:천령이 널 도와줄 거다. 그에게 돌아가보거라.
그 놈의 일은 너밖에 해결을 못하니 별 수 있나.
생각이란 것을 좀 하고... 판단하여 움직이거라.
최유찬:난 항상 생각하며 살고 있거든
숲을 망가뜨리는데 일조한 자는 그 죗값으로 숲에서 일어나는 일을 계속 지켜보기를 선택한 것이겠죠.
그것이 최청운의 선택이라면 당신 또한 응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최청운:퍽이나 그렇겠다...
최유찬:근데 큰아빠
자유가 지금 복수하는 거라면 거기의 원인인 큰아빠 잘못도 있으니까 몸 조심 하셔
문 꼭꼭 잠그고
(천령한테 존나 뛰어간다.)
아싸 나 이제 가주!
마지막 배웅에서도 최청운은 한숨을 푹 내쉽니다.
천령에게 돌아가서 열쇠를 보여줍시다.
그자라면 뭔가 알고있을 듯 하니 말입니다.
천설 숲으로 돌아가면, 천령이 머무르는 오두막 앞에 이미 그가 서 있습니다.
천령:돌아오셨군요. 손에 든 건 뭔가요…?
아아. 이젠 가주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최유찬:어, 가주의 명이다. 이 열쇠로 뭘 하면 되냐.
천령:......우선 이 오두막 문을 한 번 열어보시겠습니까?
천령이 머물던 오두막입니다.
자세히 보니 이 오두막, 문이 잠겨져 있습니다.
자물쇠로 굳게 닫힌 오두막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절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열쇠라도 필요한 걸까요?
설마 이 오두막, 여는데 필요한 열쇠라는 게….
최유찬:(열쇠로 오두막 열어본다.)
문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립니다.
천령:저 오두막, 다음부터는 미리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보시고 낯선 이에게 빌려주셔야 할 겁니다.
저도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흉내 내 열었을 뿐입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열지도 못했겠지요.
안을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주님께 해야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최유찬:(안을 살펴본다.)
난 이 집 열려 있는 줄 알았는데......
천령:그럴리가요. ...아무튼 결코 좋은 이야기는 못 되니, 들을 준비가 되면 저를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천령의 얼굴은 결의가 느껴질만큼 진지합니다.
허튼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작은 집의 문이 열리면,
벽 양 끝 책장에 빽빽하게 채워진 책들과ㅡ
벽 한쪽에 장식된 액자 속 그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먼지가 쌓인 책상까지.
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문의 중요한 문서들은 보관한 장소가 있다고요.
그게 바로 여기였군요.
최유찬:(그림 먼저 살펴본다.)
책장, 그림, 책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벽에 다가가 걸린 액자들을 자세히 보면,
역대 최가의 가족사진들이 연이어져 벽에 붙어있습니다.
가족들만 아니라 하인들의 모습도 다 같이 넣어둔 것을 보니 복작복작합니다.
초대 최씨의 가문에,
3대 최씨의 가문에,
6대 최씨의,
그리고 지금의.
찢어진 최씨 가의 마지막 그림에.
자유는 몇 번이고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옷이 조금씩 달라질 뿐 얼굴은 그대로였습니다.
때로는 최씨의 양자처럼 값진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있었고,
하인과 다름없는 옷을 입고도 그들과 나란히 서서 그림 속 한순간에 박제되었습니다.
최유찬:자유가.... 조상남이라니......
자기가 연상인 걸 알면 자기랑 안 만나 줄 줄 알고 이랬나
(책장 살펴본다.)
상당히 연식이 오래된 책장입니다.
거미줄이 슨 책장을 더듬으며 눈에 띄는 책들을 몇 권 골라봅니다.
최유찬:
기준치: | 60/30/12 |
굴림: | 6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쩐지, 유씨 가문 갔었을 때 유씨 가문이 자유에 대해 설명을 못하더라;;
최청운은 자유가 오랫동안 존재했던 자라고 했습니다.
유씨에서는 자유가 혈연으로 이어진 자라고 했고.
그를 상당히 존중하고 있었죠.
자유가 유씨의 오랜 가주였으니까…
최유찬:연하인 줄 알았는데... 조상이였고, 하인인 줄 알았는데 가주였다...
족보 왜 이렇게 꼬이냐..
난 그럼 이제 자유한테 반말도 못하잖아 (머리쥐어잡)
(책상 살펴본다.)
작은 일기장이 북엔드에 하나씩 꽂혀있습니다.
책등에 표식이 새겨진 것을 보아서는 각 가주들의 일기인 듯 합니다.
그때부터 살아있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오래 불살의 삶을 이어온 걸까요.
아득하기만 합니다.
마지막은 최청운의 일기장입니다.
[숲의 신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문득, 천령이 당신에게 말을 건네옵니다.
천령:정령들과 함께 지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숲이든 그 자연을 지키는 수호신은 존재한다고요. 제가 천설 숲을 보았을 때, 그럴만한 존재는 오직 하나만 느껴졌습니다.
어디에 위치하는지는, 영향력의 폭이 너무 넓어 찾지 못했습니다만. 이들의 말만 보면 정말 숲의 수호신은 누구인지 모르겠군요…
사람들에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존재조차 없이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숲의 신.
그리고 사람들 속에 인간으로 보이며, 소수의 사람들의 시선 속 숲의 수호자가 된 자유.
천령:어느 쪽을 수호신으로 받아들이실지는 오롯이 당신 몫이지만요.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감히 헤아릴 뿐입니다.
최유찬:하.... 머리야...
가뜩이나 공부도 제대로 안했는데.....
천령:하하... 가주가 되셨으니 이젠 정진하셔야지요.
제 이야기를 들을 준비는 되셨습니까.
최유찬:어 해봐.
그는 천천히 운을 뗍니다.
...상당히 괴로워 보이는 얼굴입니다.
천령:가주님. 제가 한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숲의 안쪽까지도 조사하고, 그동안 설치했던 마력 기둥들을 살펴봤습니다.
천령은 작은 막대 하나를 보여줍니다.
숲에 설치된 기둥과 비슷하나, 한 손에 들어오는 형태입니다.
천령:이건 마력에 감응하는 막대입니다. 숲의 마력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이 숲은….
불길한 침묵이 순간 두 사람 사이 흘렀습니다.
최유찬:숲은 이제 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천령:가주님. 꽃은 시들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는 이야기 아시지요?
천설 숲은 딱 그 상태입니다.
네, 전에는 숲 전체가 방대한 바다 같다고 비유했죠. 하지만 메말라가는 바다입니다. 그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는 겁니다.
...차마 말씀드릴 수 없어 고민하고 있었으나, 이젠 가문을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설 숲은 3년 전 저주가 퍼지고 나서부터 이미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겁니다.
최유찬:그래서 결론은
숲을 포기해야 한다?
천령:......예. 그 날 창용이 자유를 쐈다고 했죠?
자유가 무슨 의식을 하든 간에, 대량의 마력이 그 주변에 응축되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자유의 피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죠. 원래 숲의 신에게 저주받은 그 피가 말입니다.
숲이 저주한 자의 피가 마력의 중심점에 튀었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령은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합니다.
숲에게 저주받은 자의 피가 섞여들어 간 순간부터 천설 숲의 비극은 예정된 것이겠죠.
차에 독을 타는 순간, 그 전체로 독이 퍼져나가듯이.
천령:어쩌면 숲의 신의 노여움이 시작된 수백 년 전 그때부터 숲은 내리막길로, 죽음을 천천히 맞이해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섯 가주의 죽음으로 그 속도를 늦추었다가, 5년 전 사건으로 더 가속된 것이겠지요.
천령의 손에서 붉은 정령이 나타납니다.
작은 날개를 퍼덕이던 정령은 최유찬 주위를 뱅뱅 돌다가,
천령이 들고 있던 막대 주위에 다가가자 불이 붙으며 막대는 붉고 푸른 불꽃을 내며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꼭 횃불 같습니다.
천령:이제 그만 천설 숲을 보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정령들이 말합니다. 숲이 죽어가고 있다고.
물론 가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전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려 당신 대까지는 천설 숲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딱 당신이 가주로 지내는 동안입니다.
그다음부터 천설 숲은 완전히 죽어갈 것이고, 당신 가문은 그렇게 스러져가겠죠. 언젠가 당신에게 닥칠 화이지만, 미래의 일입니다.
만약 가주님께서 여기서 천설 숲을 불태운다면.
천령:자연은 다시 땅으로, 자연으로 돌아갈 겁니다. 잿더미가 되어 바람에 날려, 공기로 돌아가고, 또 다른 자연으로 향할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당신의 가문은 그대로 끝이겠지요.
가주님은 천설 숲을 불태운 배신자가 됩니다.
언젠가 닥칠 재난.
지금 당장 당신이 만들어 뛰어드는 재난.
반드시 정해진 파멸.
모든 건 최씨의 마지막 가주인 당신이 결정할 몫입니다.
최유찬:캬.... 하아... 젠장할....
천설 숲을 불태운 배신자........
하......... 존나 몰매 맞겠네.......
천령:......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주님.
최유찬:..... 존나 장난 같다. 며칠 사이에 뭐가 이렇게 많이 몰려오냐.
혼인식도 내 맘대로 정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숲을 불태울지 말지를 결정하라고
개같은거
숲을 불태우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 확실해?
네 목숨 걸고 약속 할 수 있어?
천령:예, 시간이 걸리기야 하겠지만 물론입니다.
최유찬:그럼 그거 내놔봐. (천령이 들고 있는 막대 달라고 손짓함)
어차피 끝내야할 일이라면
천령:숲을 불태우기로 결심하신 겁니까?
최유찬:내가 직접 마무리 짓는게 낫지
어. 싹다 불태워
천령:예, 가주님. ......감사합니다.
최유찬:오늘 밤에 단체로 이불에 지도 한 번 그려보자고
천령:숲의 가장 안쪽에 있는, 마지막 기둥까지 계속해서 불태우셔야 합니다. 불길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달리셔야 하고요.
최유찬:불장난해~!!!
천령:가십시오, 저는 찾야아할 문서가 하나 있어... 그 후에 따라가겠습니다.
최유찬:어어, 해라. 눈치껏 챙기고 도망쳐
(산을 불태우러 간다)
겨울바람조차 당신이 향하는 방향으로 불어옵니다.
어쩌면 천설 숲의 끝을 도와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푹푹 빠지는 눈은 불에 가까이 닿자 천천히 녹아내립니다.
홀연히 숲의 입구 앞에 서면 입구 앞의 기둥이 당신을 반깁니다.
천령은 숲의 안쪽까지 들어가 마지막 기둥이 보일 때까지 숲을 불태우라 했습니다.
천천히 그 앞에 발을 딛으려던 찰나,
등 뒤에서 높은 고함소리가 들립니다.
최천량: 최유찬,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최유찬:아 왜
문 앞에 선 최천량이 경악한 채 당신의 모습을 봅니다.
한 손에 든 활활 타오르는 막대는 그들의 눈에 횃불로 보이겠죠.
지켜보는 하인들의 얼굴에 당혹과 경악이 서립니다.
최천량: 너 미쳤어? 당장 그 불 끄고 돌아오지 못해?!
최유찬:싫어!!!!
아빠도 알고 있었지!
숲은 진작 회복 불가능이라는거!
최천량: 그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어쩔 거냐!
최유찬: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빠르게 끊어내는 게 맞지!
최천량: 미래에나 죽을 숲을, 뭐하러 지금 굳이 수명을 당겨!
최유찬:언제까지 붙들고 있을거야?!
최천량: 네 이름까지 더럽히면서...!!!
최유찬:뭐가 내 이름을 더럽혀?!
나 큰아빠한테 열쇠 받았거든?
이제 내가 가주야!
내가 가는 길이 최씨 가문의 길이라고!!
최천량: 최 씨의 마지막 가주를 배신자라 불리게 할 셈이냐!
최유찬:가주 명령이야! 나 말리지 마!
굳건한 당신의 태도에 최천량은 하인들을 시켜,
최유찬:어어?! 숲도 불타고 나도 불타는 모습 보고 싶어?!
최천량: 당장 저 못난 놈 잡아와!!!!!
최유찬:아니 좀;;
한 번만 나 믿어주면 안되나;;
우물쭈물하던 하인들이 결국 최천량의 명령에 움직이면 -
최유찬:지금까지 아빠가 하란 대로 다 했잖아~!!!!!!!!!!!!!!!!!!!
최천량: 하긴 네가 뭘 해! 다아 너 잘되라고 하는 짓인데! 어! 애비 마음도 모르고!!!
최천량을 붙잡고 복단이 그 앞을 가로막습니다.
복단: 도련님!
최유찬:내가 이번만큼 선택 하겠다고~!!!!!!!! 혼인식도 맘대로 진행했으면서~!!!!!
복단: 어서, 어서 가셔요! 제가 최대한 붙잡고 있을 테니 어서…. 가주님 하고픈대로 하셔야죠.
최유찬:어! 그 전 가주 잘 붙잡고 있어!!!
바람이 시리게 불어옵니다.
숲의 안쪽으로 향하는 바람이 말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가라고.
복단에게 가로막힌 최천량이 소리 지릅니다.
최천량: 이!!! 불효자 놈아!!!
여기 이곳에 지금.
최씨 가문의 또 다른 배신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대로 발길을 돌려 천설 숲을 향해 달렸습니다.
몇 번 눈 속에 파묻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양옆으로 지나가는 나무마다 불에 붙어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잿더미가, 불에 타는 나무들의 비명이,
그 탄 시체 같은 것들의 매캐한 연기가, 숨을 조입니다.
점차 등 뒤로 쓰러져가는 나무들의 진동이 쿵, 쿵 울릴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건.
이 연기가 너무 매캐해 질식할 것 같아서 그런 것이겠죠?
그런데도 양옆에서 타들어 가는 저 나무들의 시체들을 보면 웃음이 자꾸 나오는 건.
도대체 왜일까요.
최씨 가문의 영향이 닿는,
마지막 권역을 드러내는 마지막 기둥 앞 발걸음이 멈추면.
모든 불타오르는 것들의 한 가운데에 당신이 있습니다.
최씨 가의 문장이 새겨진 천도,
기둥에 매달린 채 천천히 불타 사라집니다.
화염 속에서, 전부 불에 타 녹아가는 것들 사이에서.
나무조차, 눈조차 녹아 땅속에 다시 돌아가고 마는 그 사이에.
기둥 밑에 무언가 보입니다.
눈이 녹고 땅이 드러난 곳에….
익숙한 형체.
유리함에 담겨있는 심장.
하지만 유가에서 본 당신의 심장과는 다른 모습.
아,
자유의 심장입니다.
최유찬:(이건 이제 내꺼다)
천천히 그 유리함을 주워들면,
누군가 당신 앞으로 다가옵니다.
자유입니다.
이제 동안 보아온 모습 중 가장 엉망이었습니다.
수호신으로 불리었던 곳이 잿더미가 되어서일까요.
당신이 지박령처럼 살아오던 곳을 내가 망쳐서 그런 걸까요.
잃어버린 심장을 찾았는데도 왜 당신은 그리 괴로워 보이나요.
웃고 있는 건지 울 것 같은지….
자유는 당신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자유:......돌려줘요. 제 심장이잖아요.
그리고, 연못에서 심장을 꺼내간 것도 당신이죠?
최유찬:어. 내 심장이잖아.
이거 돌려주면 뭐 하게?
자유:......먼저 돌려줘요, 둘 다.
해야할 일이 있는데... 잠시도 안 돼요?
최유찬:머,뭐? 둘 다?
자유가 당신 눈앞에 섭니다.
최유찬:하나는 내껀데 니가 왜 필요해
그 표정은…
두 사람의 등 뒤로, 숲 바깥에서부터 수십 마리의 새들이 날아듭니다.
그것들은 불타는 숲을 뚫고 지나가다가,
천천히 하나씩 불에 타 바닥을 뒹굴며 죽어갑니다.
최유찬:
기준치: | 75/37/15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자세히 보니 종이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새입니다.
천령이 정령들로 만들어낸 것일까요?
수십 마리의 새들이 불에 타고,
시체가 되어 죽어도 그것들은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마치 당연한 듯 수 초 만에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남은 두 마리의 새가 천천히 두 사람 앞에 섭니다.
두 마리의 새는 몸에 불이 옮겨붙어도 타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큰 새가 날개를 뻗어 작은 새를 감싸자,
두 새의 불길은 천천히 가라앉았습니다.
작은 새가 당신의 손 위에 올라탑니다.
연둣빛의 정령이 새에서 빠져나오고,
새는 그대로 종이가 되어 당신의 손 위에서 천천히 펼쳐집니다.
아주 낡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건지도 모를 종이입니다.
그 끝에, 유씨의 인장이 찍혀있습니다.
최유찬:뭐...야 이건
자유:.읽지 말아요.
최유찬:읽지 말라고? 그래.
라고 할 줄 알았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읽는다.)
종이 새는 다시 날아올라 바닥을 기어 다닙니다.
그 모습을 큰 새는 바라볼 뿐입니다.
당신의 손에 쥔, 끝이 타들어 가는 막대는 자유의 심장에 반응하여 크게 웅웅, 거린 채 떨고 있습니다.
천설 숲의 마력이 가장 짙은 곳 밑 매장되어있는 자유의 심장.
그리고, 유씨 가문에 소중하게 보관된 심장.
내 심장을 꺼내어 너와 똑같은 존재로 만들고 싶어서 이 모든 짓을 저질렀구나.
최유찬:
기준치: | 76/38/15 |
굴림: | 6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자유:......영영 함께하자면서요.
부탁이에요, 돌려줘요......
팔을 뻗어, 심장을 돌려달라는 듯 내미는 그 손길이.
희게 질린 채 떨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너와 똑같은 존재로 만들고 싶어서.
천설 숲에 피를 바쳐 마력을 모으고, 복수했나요.
네 심장을 천설 숲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이 숲에 다시 돌아와,
3년 전 당신은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최유찬:.....야, 영원을 살면 무슨 느낌이냐
세상이 다 네 것 같고, 뭐든 다 잘 할 수 있고 그래?
아니면 존나 외로웠냐?
백몇살 어린 내 심장을 꺼내 이런 짓 할 정도로.
자유:외로워요, 외로워서 차라리 어떻게든 죽고싶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함께 있어주겠다면서요. 분명 말했잖아요. 같이 있겠다고, 이제 외롭지 않을 거라고...
이제 동안 최씨에서 수호자로 불렸던 미련한 존재가 당신 앞에 있습니다.
한때는 사람이었으나.
점점 인간이라는 존재를 세월 속에서 부정당하고,
그렇게 사람도 신도 아닌 것이 되어서.
이 숲을 망령처럼 떠나지도 못한 채 다시 돌아온 것이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마저 그 늪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지독하게 외로움을 타는 존재가요.
저게 어딜 봐서 수호신이란 말인지….
비현:이 괴물!
비현이 자유에게로 검을 겨눈 채 뛰어옵니다.
저 너머에서 천령이 지팡이를 들고 뒤늦게 쫓아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비현:이 이기적인 괴물, 숲의 수호자라 불리었으면서 어찌 최씨 가에 이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어!
창용 씨를 죽이고, 비우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그 피를 숲이 흡수하도록 해 마력을 넘치게 머금어놓고.
그걸 도련님에게 퍼부어서 억지로 영생을 살게 만들 생각이잖아!
당신을 만날 때부터 불안정해보이던 자유는,
이윽고 비현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자유:그 입 다물어!
난 바란 적 없어. 숲의 신이라는 이름 따위가 되고 싶지도 않았어. 난 원래부터 인간이었다고. 날 이렇게 만든 건 숲의 신이지, 난 처음부터 숲의 신이 아니었단 말이야.
한낱 인간이었던 내게, 영생을 살게 해 미치도록 해놓고. 나는 그저 혼자 생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겪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내게 욕심이라 일컫기는.
그리고 자유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겨누어진 검조차 거들떠보지 않고...
자유:내게 명령했었잖아요. 같이 있으라고. 나는 평생 그럴 수 있는데...
수없는 인간들이 내 물음을 거절했는데, 분명 당신은 그러겠다고 했잖아요. 그냥 지나가면서 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나한테는...
나는 오직 그 말 하나로 살아왔는데.
아, 이제야 기억났습니다.
내가 아주 앓았을 때.
자유에게 너는 절대 떠나지 말라 명령해버렸었죠.
그래서 자유도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자유:그럼 도련님도 제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건가요? 평생?
그 물음에 그만,
그러겠다고 약속해버렸습니다.
그 대답을 들었던 자유의 얼굴은….
얼마나 희열에 가득찼던지...
얼마나 기뻤을까요?
삶의 영원을 약속해줄.
존재의 등장이라니.
최유찬:하.................
숨을 몰아쉬던 천령이 소리칩니다.
천령: 그만 하세요! 이제 당신 심장도 찾았잖습니까? 그러면 다시 인간의 삶으로…
자유:아니, 알잖아.
난 저주받았다고. 나 혼자 살아서 도망쳤을 때, 그 숲의 신이라는 자가 말했지.
평생을 천설 숲에서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리라고.
최유찬:근데 내가 그 숲 불태웠잖아
천령: 그렇습니다, 자유 님. 당신의 심장에 있는 마력만 포기하면 됩니다. 당신 심장은 너무…. 너무 많은 숲의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요. 저와 가주님이 도울 테니, 그대가 포기한다면….
자유:당신을 내가 어떻게 믿어?
그 가주님이 아플 때, 원인조차 찾지 못하고 돌아갔던 주제에. 허튼 수작 부리지마.
자유는 도저히 천령의 말을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자유의 심장이 쿵, 쿵 뛰는 것이 유리함 너머로 느껴집니다.
자유의 긴장과 불안, 공포가 당신 손바닥 아래에 있습니다.
최유찬:야, 정령사.
포기한다면 뭐?
말 계속 해
자유, 아니 자유님? 아 시발 넌 왜 오래 살아서 헷갈리게 만들어?;;;
자유 넌 가만히 있어봐
천령:그가 마력을 포기하기만 한다면, 제가 그의 심장 속 마력을 다시 숲으로 퍼지게 하겠습니다. 그럼 자유 또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올테고요.
이대로 심장을 넘겨주면 그는 이 자리에서 당신을 그와 똑같은 존재로 만들 것입니다.
자유:......지금 나 말고 저 자 말을 듣는거야?
최유찬:야 그래도 지금까지 나 많이 도와준 건 쟤야.
너 지금까지 말 한 마디도 없다가 어? 갑자기 나타나서 도망가기만 해놓고서는 무슨
자유:......
이럴 거였으면 왜 그런 말을 했어요?
당신의 최우선순위는 내가 되어야 하는데.
나와 같이 영원불멸한 삶을 살고,
결국 수없는 삶을 돌아 그 끝에 당신과 함께할 자는 나 뿐임을 알게 되는 순간.
그럼 당신도 나를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되겠죠.
자유:우리, 혼인하기로 했잖아요. 평생의 반려가 되기로...
돌려줘요, 그 심장.
최유찬:아니 근데 너 인간으로 안 돌아가고 싶어?
쟤가 도와줄 수 있대잖아
자유:저걸 어떻게 믿어요?
당신이 아팠을 때도 곧 죽을 병이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떠난 주제에...
최유찬:아 그랬냐? (정령사 존나 노려봄) 쟤 때문에 내 묘지도 만들어 진거야?
야 이거 하나만 묻자
내가 너랑 같은 존재가 되면
너, 행복해 질 것 같아?
자유:당신이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당연하죠.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최유찬: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잔소리 안 할 거고, 고기 반찬 없다고 밥 안먹어도?
자유:네, 뭘 해도 좋아요.
내 옆에 있기만 하면 돼요, 평생.
최유찬:하, 약속했다.
니가 아무리 초대 가주니 뭐니 천년을 살았다 뭐니 해도
나한테는 하인이다
넌 시발 내꺼라고!
(자유한테 심장 두개를 건낸다.) 허튼 짓 하면 내가 내 심장 뽀갤꺼니까 잘해라;;
자유는 제 심장을 받아들고선 환히 미소 짓습니다.
천령은 당신의 선택에 작게 침음하였으나 수긍하였고,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채 비현은 최유찬에게 외칩니다.
비현: 도련님...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지만 자유와 약속했었습니다.
그의 옆에 영원히 있어 주겠다고.
이것이 자유가 원하는 바라면. 이루어줘야겠죠.
서로가 영원한 존재가 되어서.
최유찬:그래 불멸? 까짓거 하면 되지...
서로의 유일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니…
어쩌면 지독히 끔찍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최고의 결말인걸요.
언젠가 서로의 심장을 나누어 숨기면,
서로의 목숨마저 영원히 가질 수 있겠죠.
그가 당신의 목숨을 쥐고.
당신이 그의 숨을 멈출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원불멸한 존재가 되고,
서로의 최우선이 될 겁니다.
모든 것이 불타버린 설원.
천설 숲 가장 한가운데서 이루어진 혼례식.
평생의 반려가 된다는 선언은,
심장을 예물로 바치면서 완성되었습니다.
자유:자, 이제 돌아가요.
자유는 환히 웃으며 손을 건네옵니다.
당신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혼례식.
고독했던 불멸자의 삶,
그 옆을 함께 걸어줄 반려자가 생긴 겁니다.
불멸자의 시작점이자,
최유찬:변하기만 해봐. 이혼이야 (네 손을 꽉 잡는다.)
최 가의 배신자로서 종점.
그 길은 누군가의 원망과 좌절,
죄책과 집착으로 엉망이었지만 말입니다.
자유, 생환.
최유찬, 생환.
당신은 자유의 옆에서 반불멸로 함께 살아갑니다.